금융감독원이 NH농협생명의 판촉물 구매 과정에서 정상적인 계약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고 검사에 나섰다. NH농협생명은 자사의 보험 상품 판매를 독려하기 위해 지역 농·축협에 제공할 판촉용 핸드크림 10만개를 20억원어치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는데, 납품 하청업체가 직원 가족이 운영하는 '피부숍'인 데다 핸드크림은 절반인 '5만개'만 납품됐다.
일각에서는 이번 계약이 불법 리베이트에 이용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 계약서 결재선엔 당시 농협생명 부사장이었던 박병희 현 대표가 이름을 올렸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 21일 농협생명 판촉물 수의 계약과 관련해 검사에 착수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다"라고 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이병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농협중앙회에서 제출받은 NH농협생명 감사 자료에 따르면, 농협생명은 지난해 12월 31일 ㈜농협하나로유통삼송농산물종합유통센터(삼송유통센터)와 지역 농·축협 총국 17곳에 공급할 판촉용 핸드크림 3종 세트를 구입하는 수의 계약을 체결했다. 한 세트당 단가는 2만원으로 총 10만개, 20억원어치를 구매하는 내용이다. 지역 농·축협에서 농협생명의 보험 상품을 팔 때 고객에게 제공할 판촉물을 지원해 실적을 높이려는 목적이다. 품의서엔 "농·축협 부문 사업 목표(300억원) 필달을 위한 총력 추진 기반 강화 목적"이라고 적혀 있다.
수상한 정황은 계약 이후 곳곳에서 발견된다. 농협생명은 삼송유통센터와 AO, 라인플러스 등 업체 3곳에서 견적서를 받은 결과, 삼송유통센터가 가장 낮은 단가를 제시해 이 업체와 계약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삼송유통센터는 AO, 라인플러스에 하청을 줬고, 두 업체는 다시 '지현살롱'이라는 업체에 재하청을 맡겼다.
화장품 제조가 아닌 유통에만 3개사가 낀 것인데, 문제는 지현살롱이 농협생명 직원의 여동생이 운영하는 피부 관리 숍이라는 점이다. 소규모 사업자 정보 조회 사이트 '머니핀'에 따르면 지현살롱은 피부 미용, 속눈썹 연장 전문 업체로, 사업장은 전라남도 완도읍에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핸드크림은 납품 기한인 지난 2월 28일까지 계약과 다르게 5만개만 보급됐다. 이러한 내용의 제보가 농협중앙회에 접수됐고, 농협금융지주가 이를 전달받아 지난 8월 28일부터 9월 11일까지 현장 감사를 진행했다. 나머지 5만개 핸드크림은 농협금융의 감사가 시작된 직후 납품된 것으로 확인됐다.
납품 가격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온다. 판촉물로 구매한 핸드크림 3종 세트는 1세트당 단가가 2만원으로 책정됐다. 인터넷 판매 가격이 3만7000원인데, 대량 구매를 고려해 2만원까지 낮췄다는 것이다. 하지만 네이버 등 주요 포털 및 쿠팡 등 전자상거래 구매 상위권에 오른 상품 중 비슷한 성분과 용량의 핸드크림 세트의 가격은 1만원 안팎으로 형성돼 있다. 화장품은 브랜드, 기능성 등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긴 하나, 해당 제품은 판매사조차 불분명한 데다 현재 공식 판매 사이트는 운영이 중지된 상태다. 화장품 업계 한 임원은 "특별한 브랜딩이나 기능성 성분이 들어간 것이 아니라면 일반적인 핸드크림 30㎖ 제품의 판매가는 3000원 정도다"라며 "세트당 1만원 안팎이 대부분이다"라고 했다.
농협금융 내부에선 이 석연치 않은 계약이 리베이트를 위한 시도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 농협 관계자는 "단순 직원 개인의 일탈로 보이지 않는다"며 "중간에 빼돌리려 했던 돈이 농협 내부에 만연해 있는 리베이트 자금으로 활용됐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했다.
박병희 농협생명 대표는 조선비즈와 통화에서 "농협금융이 감사 중인 사안이라 따로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리베이트 의혹에 대해서도 즉답을 피했다. 농협생명 관계자는 "결제 금액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부사장도 결재선에 들어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