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저축은행 전경. /조선DB

저축은행이 자영업자 등 개인사업자 대출 규모를 1년 사이 16% 축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대출은 줄이고 가계 대출 비율을 늘리는 것으로 포트폴리오를 바꿨기 때문이다. 특히 서민 급전 창구인 소액 신용 대출 규모가 2008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는데, 금리는 고금리로 손꼽히는 카드론보다 높다. 저축은행이 정부의 '생산적 금융' 기조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저축은행 79곳의 기업자금 대출 잔액은 46조7340억원으로, 전년 동기(52조1303억원)보다 10.3% 줄었다. 중소기업 대출은 같은 기간 49조2806억원에서 43조2119억원으로 12.3% 감소했다. 특히 자영업자가 주로 이용하는 개인사업자 대출은 17조952억원에서 14조3096억원으로 16.2% 감소했다.

저축은행은 중소기업·자영업자 대출을 줄인 대신 가계 대출을 늘리고 있다. 가계 자금 대출 잔액은 올해 상반기 41조684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5.5% 증가했다. 특히 소액 신용 대출은 같은 기간 1조1473억원에서 1조2880억원으로 12.2% 증가했다. 저축은행 소액 신용 대출이 1조2000억원을 넘어선 것은 2008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소액 신용 대출은 자영업자들도 자주 사용하는 상품이다. 개인 사업자 대출을 받지 못한 자영업자들의 급전 창구로도 활용된다. 그런데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저축은행의 300만원 이하 소액 신용 대출 금리는 지난 8월 16.1%로, 대표적인 고금리 상품인 카드론 9월 평균 금리(14.1%)보다 높다. 주요 은행의 500만원 이하 소액 대출 금리(6.28%)와 비교하면 2배 이상인 셈이다. 개인 사업자 대출을 조이면서 더 많은 자영업자가 고금리 대출로 내몰리는 셈이다.

서울의 한 은행 대출 창구. /뉴스1

저축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규모가 줄어든 것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때문이다. 저축은행은 지금껏 중소기업 대출 절반가량을 부동산 PF로 채울 정도로 적극적인 대출 영업에 나섰다. 하지만 대규모 부실이 발생하자 부실 채권 상각·매각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전체 규모가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개인 사업자 대출을 조인 것은 부동산 PF 부실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축은행을 이용하는 자영업자 대다수가 중저신용자인 만큼, 리스크가 높은 개인 사업자 대출을 줄여 보수적인 영업으로 노선을 바꾼 것이다. 반면 인터넷 전문은행 3사(카카오·토스·케이뱅크)의 개인 사업자 대출 잔액은 올해 상반기 5조5000억원으로 3년 사이 3배 이상으로 늘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과거에 개인 사업자 대출을 많이 늘렸지만, 최근 업황이 좋지 못하다 보니 적극적인 대출 영업을 하기보다는 리스크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며 "포트폴리오를 보수적으로 조정하는 차원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개인 사업자 대출도 주택을 담보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부동산 시장이 위축돼 있어 늘리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