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혁신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한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자본의 분리) 규제 완화를 추진하기로 하면서 은행의 혁신기업 출자 규제 완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제한적으로 은산분리를 완화해 부동산에 쏠린 은행 자금을 혁신산업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0일 정치권과 금융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은행권이 혁신기업에 투자할 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혁신산업 투자에 한해 제한적으로 출자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혁신기업에 투자하는 은행엔 인센티브를, 부동산 대출에 집중하는 은행엔 패널티를 주는 정책 방향을 설계 중"이라며 "다만 내부 반대 목소리도 있어 투명하고 제한적으로 규제 완화를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금산분리는 금융과 산업자본을 분리하는 규제다. 현재 산업자본은 은행 지분을 4%까지만 보유할 수 있으며,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에만 10%까지 지분을 늘릴 수 있다. 반대로 금융지주회사는 일반기업의 의결권 있는 지분을 최대 5%까지, 은행과 보험사는 15%까지만 취득할 수 있다.
그동안 금융권에선 금산분리 규제가 금융사의 혁신산업 투자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은행의 경우 출자 규제 때문에 대부분 대출 형태로 혁신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금융지주사의 경우 사실상 혁신기업 투자 길이 막혀 있다. 금융지주사나 은행이 펀드를 통해 간접투자를 하더라도 해당 펀드가 기업에 대규모로 투자하면 출자 한도 규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에 금융 당국은 2022년부터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추진했지만 특별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결국 금융지주사 핀테크 출자한도를 기존 5%에서 15%로 완화한 것에 그쳤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의 반대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AI·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대해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이 대통령이 지시한 금산분리의 핵심은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규제 완화다.
기업들의 대규모 자금 조달을 막는 규제를 완화해 초대형 설비 등 투자 확대를 모색하겠다는 취지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일반지주회사는 금융 자회사를 둘 수 없지만, 2021년부터 신사업 투자를 위해 제한적으로 CVC 설립을 허용했다. 다만 지주사 산하 CVC는 반드시 100% 자회사 형태여야 하고, 투자 재원도 외부에서 40%까지만 조달할 수 있다. 현재 외부 투자 규제를 풀어 자금 운용의 폭을 넓히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금융권은 은행의 산업자본 출자 규제도 함께 완화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도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금융사와 기업 모두 금산분리 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위원장은 "점점 대규모 투자를 일으켜야 하는 상황에서 금산분리 규제를 합리화, 개선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관계 부처와 협의해 실용적인 방안들을 강구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