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 올라온 가짜뉴스 영상 및 댓글. 자신을 농협은행 직원이라고 소개하며 시니어 현금 지원, 금리 혜택을 소개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80대 어르신이 창구에 찾아와 NH농협은행에서 30년 이상 거래했다며 장기 고객 충성 보너스 35만원을 달라고 했습니다. 저희 은행엔 그런 제도가 없다고 말씀드렸더니, 농협은행 직원이 유튜브 방송에서 다 얘기했는데 왜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냐며 버럭 화를 내시더라고요. 참 난감했습니다."

추석 연휴가 끝난 직후, 전국 곳곳의 농협은행, 단위 농협 창구에는 똑같은 내용의 문의가 빗발쳤다고 합니다. 내용은 하나같이 60세 이상 장기 거래 고객 충성 보너스를 어떻게 신청하느냐는 것이었는데요. 그런데 농협은행엔 장기 거래 고객에게 별도의 현금을 주는 제도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다 가짜 뉴스가 퍼진 것일까요?

사건의 발단은 한 유튜브 영상이었습니다. 지난 8일 올라온 한 편의 영상은 14일 오후 3시 기준 조회수 32만회를 기록 중입니다. 영상엔 인공지능(AI)으로 만든 가상의 중년 남성이 등장합니다. 이 남성은 자신을 농협은행 재직 30년 차 김재한 과장이라고 소개하곤, 60세 이상 어르신들이 놓치고 있는 '특급 혜택'을 공유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 혜택만 잘 챙기면 연간 50만원에서 최대 180만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65세 이상이면 정기 예·적금 가입 시 우대금리 0.5~1.2%를 받을 수 있다" "70세 이상은 의료비의 10%가 캐시백된다" "1년에 시니어 건강검진 지원금으로 30만원이 지급된다" "60세 이상, 30년 이상 장기 거래 고객엔 매년 현금 35만원을 준다" 등의 허위 정보를 그럴싸하게 설명합니다. 또 이 혜택은 선착순 마감되며, 일부 지점은 15일 지원이 종료되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고도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마음 급한 장년층 고객들이 부리나케 은행에 문의한 것이죠.

일러스트=조선DB

장년층으로 유추되는 이들은 영상에 "소중한 정보 감사하다" "오늘 바로 가서 신청하겠다. 너무 고맙다" 등의 댓글을 남겼습니다. 자칭 김 과장의 말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는 듯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30년을 근무했는데 직급이 과장인 것도 수상쩍을 뿐더러 "이 혜택은 직원도 모를 수 있는데, 포기하지 말라"는 말도 석연찮습니다. 댓글 창엔 허위 정보에 현혹되지 말라며 경고하는 글도 수두룩했습니다. "어르신들 상대로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 "아버지가 신청해 달라며 이 영상을 보냈는데, 기가 차다"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자신을 농협 직원이라고 소개하며 가짜뉴스에 속지 말고 신고해 달라는 댓글도 상당수 달렸습니다.

이처럼 장년층을 대상으로 허위 정보를 퍼트리는 유튜브 가짜뉴스는 최근 몇 년 새 급격하게 늘고 있습니다. 현금성 지원, 대출금리 감면 등 솔깃할 만한 키워드로 관심을 끌어 영상 조회 수를 높이고 수익을 늘리려는 목적이 짙어 보입니다. 이들이 장년층을 주로 목표로 삼는 것은 젊은층에 비해 가짜뉴스에 잘 현혹되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디지털 문해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이들을 처벌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불법사금융과 같이 금전 등의 재산을 편취하는 사기 행위는 아니기 때문에 따로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는 셈이죠.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월 유튜브 가짜뉴스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을 지시했습니다. 국무회의록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가짜뉴스로 돈을 버는 행위를 근본적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