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역 일대에 15년 넘게 자리 잡은 폐건물이 사라지고 지상 22층 규모의 도시형생활주택이 들어설 예정이었으나 고사될 위기에 놓였다. 새로 지어질 건물 일부를 분양받기 위해 계약을 맺었던 신촌새마을금고가 새마을금고중앙회로부터 검사를 받아 자금 집행을 못 하게 됐다며 중앙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신촌역 3번 출구는 대학생들의 만남의 장소다. 하지만 50m도 떨어지지 않은 4번 출구 앞에는 흉물스러운 폐건물이 있다. 2010년 정비구역, 2013년 지구단위계획구역, 2014년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각각 지정됐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골칫거리다.
신촌역 4번 출구 일대가 전환점을 맞이한 것은 2021년 7월 도시정비형 재개발구역으로 변경되면서다. 재개발 시행사인 에스씨디(SCD)는 폐건물 부지(서대문구 창천동 18-42)를 포함한 일대 세 필지를 1260억원에 매입하고, 20층짜리 건물을 세우려 했다.
이 무렵 신촌새마을금고는 SCD가 세울 건물로 본점을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신촌새마을금고는 중앙회로부터 본점 이전에 대해 '적정의견'으로 최종승인을 받았고, 2023년 4월 지하 1층과 지상 1~2층을 418억원에 분양받기로 최종 계약했다. 이후 신촌새마을금고는 중도금 등으로 273억원을 납부했다. 15년 넘게 방치됐던 초역세권 부지에 'MG신촌새마을금고 신축부지'라는 팻말이 걸리며 기대감이 높아졌다.
그런데 중앙회는 계약 3개월 뒤인 2023년 7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신촌새마을금고에 대한 검사를 진행하고 이 계약이 표면적으로는 분양계약이지만, 실질적으로 신촌새마을금고가 부동산 개발사업에 직접 참여하는 계약이라고 판단했다. 금고가 개발사업에 참여하는 것은 법에서 금지돼 있다. 중앙회는 최종 계약 이전에 맺어졌던 양해각서(MOU)에 개발사업 관련 조항이 담겨 있었던 점을 문제 삼았다. 이 문서는 중앙회의 최종 승인 과정에서 제출되지 않았다.
신촌새마을금고가 검사 결과에 따라 나머지 분양대금을 납부하지 못하게 되자 시행사인 SCD는 자금난에 빠지며 대출 원리금을 갚지 못했다. 필지는 결국 공매로 넘겨졌다. 신촌새마을금고는 이 과정에서 이미 납부했던 예약금·중도금 276억원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해 부실 금고로 전락했고, 지난 5월 독립문새마을금고로 합병됐다.
신촌새마을금고는 문제가 된 MOU는 법적 효력이 없는 잠정적 합의 성격의 문서일 뿐이라며 중앙회의 검사가 부당하다고 맞서고 있다. 최종적으로 법적 효력이 있는 분양계약서에는 문제 소지가 될 조항이 전부 삭제돼 있는데, 중앙회가 MOU에 담긴 조항을 문제 삼아 금고에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소송전으로 이어졌다. 신촌새마을금고는 중앙회를 상대로 276억원의 손해배상과 합병·공매 무효 소송 등을 제기했다. 중앙회는 신촌새마을금고에서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A씨를 업무상 횡령·배임과 특경법 배임 등으로 고소했다. 경찰은 A씨를 검찰에 송치했으나, 검찰은 현재 증거만으로 기소할 수 없다고 판단해 보완수사를 요구한 상태다.
이번 소송전으로 신촌역 4번 출구 일대의 재개발도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공매 무효 소송이 걸려 있어 분양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재개발은 은행·증권사 등 대주단에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을 받은 뒤, 선분양을 통해 받은 분양대금으로 자금을 확보해 공사를 시작해야 한다. 분양대금이 원활히 들어오지 못하면 다시 부실이 발생할 수 있다.
현재 문제가 된 필지는 대명소노그룹 오너 2세 서경선씨가 대표로 있는 원경개발이 공매를 통해 감정평가액(1707억원)의 절반 수준인 910억원에 사들였다. 현재는 기존 건물을 철거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이곳에는 지하 5층~지상 22층 규모의 오피스텔과 근린생활시설 등이 건립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