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소비자 보호를 강조하면서, 금융 민원 1위인 보험업계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이 원장이 불건전 영업 행위에 대해 "행위자뿐만 아니라 경영진까지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고 경고하면서, 제판 분리(제조·판매 분리)로 인한 보험사의 리스크는 더 커질 전망이다.
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금융 민원 11만6338건 중 손해보험 민원은 4만365건(34.7%), 생명보험 민원은 1만3085건(11.2%) 등 총 5만3450건으로 나타났다. 보험 민원이 전체 민원의 45%로, 금융권 중 가장 많았다.
보험 민원 중에서는 보험금 산정·지급 민원이 2만5001건으로 가장 많았다. 보험금 지급·부지급을 결정하는 면부책 결정 민원(5673건)까지 합하면, 보험 민원 중 절대다수가 보험금 관련 민원인 셈이다.
이 원장도 주요 보험사 최고경영자(CEO)와 간담회에서 가장 먼저 문제로 지적했던 것이 "보험 가입은 쉬우나 보험금 받기는 어렵다"는 점이었다. 이 원장은 "보험금 지급과 관련된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보장 내용을 합리적이고 명확하게 제시하고, 소비자에게 이를 충분히 설명함으로써 보험금 지급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손해사정사는 보험금 지급 여부와 금액 산정을 하고, 보험사는 이를 토대로 보험금 지급 등 최종 결정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손해사정업체 대다수가 보험사에 소속돼 있거나 위탁돼 있어, 실질적으로는 보험사가 손해사정과 보험금 지급 결정을 모두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소비자는 보험사와 독립된 손해사정사를 무료로 선임할 수 있지만, 실손보험 등 일부 분야에만 한정돼 있다. 소비자는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하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대응 방법이다.
제판 분리에 대한 위험도 커질 전망이다. 과거 보험사는 보험사에 소속된 전속 설계사를 통해 자사 상품을 판매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보험사는 상품을 설계·제조하고 법인보험대리점(GA) 등 영업 조직이 상품 판매를 전담하는 제판 분리가 가속화됐다. 현재 보험 영업 시장은 보험사 전속 설계사 조직과 보험사의 자회사로 있는 자회사형 GA, 보험사와 독립된 별도 GA 등 세 갈래로 돼 있는데, 지난해 기준 GA 소속 설계사 수(28만8446명)가 전속 설계사 수(18만4468명)를 넘어선 상태다.
문제는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라 소비자에게 발생한 손해를 보험 설계사(판매대리중개업자)가 아닌 보험사(직접판매업자)가 1차적으로 배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상품을 어떻게 설명하고 가입을 권유할 것인지는 GA가 하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완전 판매에 대한 책임은 보험사가 질 수도 있는 것이다. 제판 분리는 됐지만, 보험사가 GA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일부 부담해야 하는 구조다.
보험연구원은 지난 2월 발표한 연구보고서에서 "새로운 판매 채널이 다양화되고 거대화될수록 보험사의 통제권이 약화됨에도 1차적 배상 책임을 지우는 규정으로 인해 판매 채널의 불완전 판매는 예방하기 어렵다"며 "제판 분리의 가속화를 고려할 때 판매 기능과 판매 책임이 연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이 원장이 보험 상품 설계·심사 단계부터 소비자 보호 체계를 강화해달라고 주문한 것 또한 보험업계의 골칫거리다. 건강보험 중심의 경쟁이 심화된 상황에서도 보험금 한도 상향 등 경쟁을 자제하라는 메시지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실제 치료 비용보다 과도한 보험금이 지급되는 질병·상해보험 등을 잘못된 보험 상품 설계의 사례로 제시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감원이 민원이 많은 보험업계를 우선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라며 "회계 규제도 기다리고 있어 여러모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