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시중은행 본사 전경. /각 사 제공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국내 은행장과의 첫 만남에서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 판매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면서 은행권이 긴장하고 있다. 금융 당국이 홍콩 H지수 ELS와 관련해 은행권에 최대 8조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지난달 28일 국내 20개 은행장과 간담회에서 "금융 감독·검사의 모든 업무 추진에서 금융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라며 "더는 ELS 불완전 판매 등과 같은 대규모 소비자 권익침해 사례는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이 소비자 보호를 강조하기 위한 사례로 ELS 불완전 판매를 언급한 만큼, 홍콩 H지수 ELS 제재 절차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금융 당국의 제재는 금감원의 검사의견서 발송을 시작으로 제재 조치안 통보, 제재심의위원회 개최, 금융위원회 최종 결정 순서로 이뤄진다. 금감원은 지난해 4월 검사의견서를 발송했으나, 1년이 넘은 현재까지 제재 조치안을 작성하지 않고 있다. 과징금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를 두고 해석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르면, 금융 당국은 불완전 판매와 관련된 계약으로 얻은 수입 또는 이에 준하는 금액의 50% 이내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문제는 계약으로 얻은 '수입'을 어떻게 산정하느냐는 것이다. 은행이 ELS를 판매해 얻은 이득(수수료)이 기준인지, ELS 판매금액(투자 원금)이 기준인지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5대 은행 기준 홍콩 H지수 ELS 수수료는 1800억원인 반면, 판매금액은 16조원에 달한다.

만약 판매금액을 기준으로 하면 이론상 과징금은 최대 8조원까지 부과될 수 있다. 은행별 홍콩 H지수 ELS 판매금액을 보면, KB국민은행이 8조1972억원으로 가장 많다. 그 밖에 신한은행은 2조3701억원, NH농협은행은 2조1310억원, 하나은행은 2조1183억원, 우리은행은 413억원 수준이다. 판매금액이 가장 많은 국민은행에 대한 과징금 규모는 최대 4조원 안팎이다. 나머지 신한·농협·하나은행도 1조원 가량을 부담해야 한다.

그래픽=손민균

은행권이 선제적으로 홍콩 H지수 ELS 손실 계좌에 대해 자율배상을 실시한 점 등이 참작되면 실제 과징금 규모는 8조원보다 적을 수 있다. 2024년 말 기준 은행권의 홍콩 H지수 ELS 손실 계좌는 17만건으로 원금은 10조4000억원 규모다. 은행권은 계좌 15만9000건에 대해 자율배상을 진행해 손실액 4조1000억원 중 1조3000억원을 배상했다.

은행권은 과징금 제재에 문제 소지가 있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손실 계좌 17만건 모두 불완전 판매라고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과징금 제재를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과징금은 설명의무 위반과 불공정 영업행위, 부당 권유행위, 기타 준수사항 위반인 경우에 부과될 수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설명의무 위반 중에서도 불확실한 사안에 대해 단정적 판단을 제공하는 '왜곡 설명'인 경우에는 과징금 부과 대상이 아니다.

은행권 관계자는 "자율배상은 불완전 판매와 별개 기준에 따라 진행된 것이라 자율배상을 했다고 자동으로 불완전 판매가 인정된 것은 아니다"라며 "자율 배상을 했는데도 과징금이 판매 금액에 따라 정해진다면 은행들은 억울한 측면이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금융 당국에서 자율 배상 등을 참작해 과징금을 산정한다고 했으니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입장이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