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에 설치된 시중은행 ATM 기기 모습./뉴스1

정부가 324만명에 대한 '신용 사면'을 실시함에 따라 신용 인플레이션이 심화하고 대출 문턱이 더 오를 것이란 전망이 금융권에서 나온다. 금융회사의 입장에선 무더기로 신용점수가 올라 신용평가 체계를 믿기 어려워지고, 부실 위험을 줄이기 위해 심사를 더 엄격하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다음달 30일부터 성실 상환 연체 채무자의 연체 이력 정보 공유 및 활용을 제한하는 신용회복 지원 조치를 시행한다. 지원 대상은 2020년 1월부터 이달까지 5000만원 이하의 연체가 발생한 개인 및 개인사업자 324만명이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다. 1999년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당시 약 40만명의 연체 이력을 삭제했으며, 2013년 박근혜 정부 땐 10만명에 대한 신용 사면을 단행했다. 지원 대상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가파르게 늘어 2021년 문재인 정부 땐 250만명, 윤석열 정부에선 290만명의 연체 기록을 지웠다.

신용 사면의 문제는 신용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한다는 점이다. 연체 이력 정보가 모두 삭제되면 신용점수는 오르게 되는데, 지난해 290만명 신용 사면 땐 개인 신용점수가 평균 31점 상승했었다. 신용점수가 계속해 상향 평준화되면 금융사는 대출 심사 기준을 강화할 수 밖에 없다. 은행 관계자는 "이전에는 1000점 만점 기준 신용점수 500~600점을 중신용자로 봤다면, 이제는 700~800점은 돼야 한다"며 "신용 사면과 같은 인위적인 조정이 신용평가 체계의 불신을 키우고 변별력을 하락하게 한다"고 했다.

가계대출 규제로 높아진 대출 문턱은 더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미 신용 1등급(KCB 기준 942점 이상)이 아니면 대출이 쉽지 않은 상태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6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에서 가계대출(신규 취급액 기준)을 받은 차주의 신용 점수는 평균 944.2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김상봉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신용 사면은 신용평가 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며 "차주 선별이 쉽지 않아진 은행들은 대출금리를 높일 수 있고, 신용도가 더 높은 차주, 담보 위주의 대출을 선호하는 부작용이 생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