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장기 연체채권 매입·소각 정책을 두고 대부업권 일각에서 채권 매입가율이 낮아 손실 불가피하다며 기준 변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부업권은 협의체를 통해 의견을 수렴한 뒤 정부에 전달할 것으로 전해졌다.
30일 대부업계에 따르면, 대부업체와 부실채권(NPL) 전문사 등은 조만간 대부업권 협의체인 현장대책반을 통해 장기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배드뱅크)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금융 당국이 배드뱅크 추진을 본격화하자 업계의 통일된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것이다.
배드뱅크는 정부가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 연체채권을 매입해 소각하는 정책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등 예측할 수 없는 사유로 장기 채무자가 된 사람들의 빚을 탕감해 재기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다. 정부가 매입·소각할 연체채권 규모는 16조3613억원(113만4278명)이다.
금융 당국은 연체채권 매입가율을 5%로 산정해 예산을 짜고 있다. 16조원을 5%로 매입하려면 8000억원이 넘는 예산이 필요하다. 금융 당국은 2차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조달한 4000억원을 투입하고, 나머지 4000억원은 금융권이 부담하는 방법 등을 고민하고 있다.
금융권은 연체채권을 5%에 매각하고 분담금까지 내야 한다. 특히 대부업계에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대부업계는 매입·소각 대상 채권을 2조원 보유하고 있다. 단순 계산하면 2조원짜리 채권을 1000억원에 매각한 뒤, 수백억원의 분담금까지 부담하는 셈이다. 대부업계가 보유한 채권 규모는 한국자산관리공사(4조6000억원)와 공공기관(4조2000억원) 다음으로 크다.
대부업계는 매입가율 5%는 너무 낮은 데다 모든 채권에 일괄 적용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보고 있다. 연체 기간이 7년 이상이라도 회수가 가능한 채권과 불가능한 채권을 구분해야 하는데, 일괄 5%로 가격을 매기면 손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특히 부실채권을 매입하고 직접 추심해 수익을 올리는 소규모 NPL 전문사의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대부업권의 채권 매입가율은 배드뱅크 매입가율(5%)의 약 4배 이상인 24.8%였다. 대부업계는 이러한 차이가 7년 이상 연체채권에 모두 적용될 수는 없지만, 비싸게 주고 산 채권을 저렴하게 매각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부업계 관계자는 "정말 빚을 갚지 못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반대로 악질적으로 빚을 갚지 않고 연체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여러 상황을 고려해 매입 기준을 세워야 하는데, 5%로 일괄 적용하면 손실이 발생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규모가 큰 NPL 전문사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소규모 NPL 전문사 다수는 모회사 없이 오너가 운영하는 개인 회사"라며 "개인이 자신의 자산을 양보해 연체채권을 정리할 것인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대부업계는 차주의 소득과 연체 상황 등을 면밀히 따져 매입가율을 차등 적용하는 기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부업계 일각에서는 현재 기준이 적용되면 대부업체 다수가 배드뱅크에 협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 대부업계 관계자는 "안그래도 업권이 좋지 않은 상황인데 손실을 본다고 하면 얼마나 참여할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