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처음으로 가상자산을 수탁한 기업을 위한 전용 보험이 등장했다. 법인의 가상자산 시장 참여가 가능해지면서 추가 안전장치가 필요해지다 보니 최근 보험사들의 관심이 증가하는 추세다.
23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전날 삼성화재는 한국디지털에셋(KODA)과 가상자산 전용 보험 계약을 체결했다. 이 상품은 법인 및 기관 투자 확대에 대비해 마련된 고위험·고액 수탁 전용 보험으로, 초기 가입 금액은 2000만달러(약 270억원)다. KODA 측은 수탁 자산 규모가 증가함에 따라 보상 한도를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해외 보험사와 논의할 계획이다. KODA는 해시드와 KB국민은행이 설립한 가상자산 커스터디(수탁) 기업이다.
이번 보험은 국내 최초로 금융권 수준의 내부 통제와 보장 체계를 갖춘 가상자산 수탁 보험으로 평가되지만, 실질적인 위험 인수는 국내 보험사가 아닌 해외 재보험사가 맡는 구조다. 삼성화재는 KODA와 계약에서 보험 발행 주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국내에는 가상자산 보험에 대한 규제 기준과 리스크 평가 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아, 대부분의 보험 리스크는 해외 재보험사를 통해 이전됐다. 이로 인해 보험료는 상대적으로 높고, 보장 조건 역시 제한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장 범위는 공식적으로 공개되진 않았으나, 업계에 따르면 커스터디 사업자가 직면할 수 있는 내부자 사고, 프라이빗 키 분실, 물리적 보관 시스템 손상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KODA 측은 고객별 개별 지갑과 독립된 프라이빗 키로 자산을 관리하고 있어, 사고 발생 시에는 전체 고객이 아닌 해당 지갑 단위로 보상이 이뤄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는 특정 지갑에 문제가 발생해도 다른 고객 자산에는 영향을 주지 않도록 설계된 '지갑 분리 보상 방식'이다.
이러한 상품이 탄생한 배경에는 국내 가상자산 시장 법인 확대가 있다. 법인이 가상자산에 투자하기 시작하면 가상자산 수탁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법인 투자자들은 개인 투자자들과 달리 엄격한 내부통제와 법적 책임, 회계기준이 따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탁업체는 감사에 필요한 자산 증명과 리포트를 제공하는 동시에 보안 인프라를 통해 자산을 감시한다.
문제는 법인이 수탁 서비스를 사용하면서도 생길 수 있는 위험이다. 해킹이나 내부자 사고가 대표적이다. 기관 투자가 활발한 해외에서는 이미 수탁서비스를 위한 보험 상품이 다양하게 출시돼 있다. 영국의 로이즈나 에이온, 마쉬 등의 글로벌 보험사들은 디지털 자산 기업 전용 상품을 개발하고 맞춤형 보험을 설계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국내 보험사 중 가상자산 손실을 보장하는 상품을 판매하는 곳은 없다. 우선 가상자산은 변동성이 높아 보험의 위험산정 및 보험료율 책정이 어렵다. 또한 국내에서는 가상자산에 대한 명확한 회계나 법적 지위가 부재한 상황이다. 가상자산에 대해 화폐로 볼 것인지 자산으로 볼 것인지 조차도 모호하다. 이와 함께 금융 당국이 새로운 금융상품에 대해 보수적이고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보니 보험사도 섣불리 나서기 어렵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최근 관심이 많은 펫보험도 과거에는 취급하는 곳이 단 1곳뿐이었다"며 "가상자산 시장이 커지면 커질수록 보험 영역에서도 새로운 리스크와 수요를 반영한 상품이 생겨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