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8일(현지 시각) '디지털 달러'인 스테이블코인을 법제화하는 '지니어스 법안'과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발행을 금지하는 'CBDC 국가 방지 법안'에 모두 서명했다. CBDC와 스테이블코인은 모두 디지털 화폐다. 하지만 CBDC는 중앙은행이, 스테이블코인은 테더·써클 등 민간 기업이 발행한다. 미국은 디지털 달러의 발행과 사용, 회수·소각 등을 모두 민간에 맡긴 것이다.
반면 중국은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발행하는 CBDC 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주도권을 쥐고 디지털 화폐를 추진하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 3월 디지털 위안화(e-CNY) 개발·응용을 금융 5대 중점과제 중 하나로 꼽았고, 지난 3일에는 상해 자유무역시험구 내에서 디지털 위안화 시범 적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두 나라가 디지털 화폐를 둘러싼 패권 경쟁에 돌입했지만, 한국은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구체적인 노선이 정해지지 않았다. 앞서 한국은행이 CBDC를 추진했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미국식 모델로 관심이 집중됐다. 다만,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공식 석상에서 민간 발행 스테이블코인은 부작용이 크다고 밝혀 반대 의견도 주목받고 있다. 조승래 국정기획위원회 대변인은 지난 14일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인허가는 누가 할 것인지, 다른 나라와의 관계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의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디지털 화폐는 발행 주체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처럼 민간 기업이 발행하면 스테이블코인, 중국처럼 중앙은행이 발행하면 CBDC로 불린다. 누가 발행하는지에 따라 이름만 바뀔 뿐, 디지털 화폐라는 기능과 쓰임새는 유사하다.
하지만 발행 주체에 따른 파급효과는 다르다. CBDC는 중앙은행이 가치를 보증하기 때문에 가장 안전하다. 중앙은행이 CBDC를 발행하고 소각하는 등 직접 관리·감독하기 때문에 통화정책을 펼치는 데도 부담감이 없다. 하지만 CBDC는 일반 화폐와 달리 실명제다. 정부가 누가 얼마만큼 어디에 CBDC를 사용했는지 추적·감시할 수 있다는 것이 단점이다.
민간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은 범용성이 뛰어나다. 24시간 언제든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스테이블코인을 구매해 사용할 수 있다. 특히 많은 시간과 비용이 발생하는 해외 결제나 환전을 저렴하고 손쉽게 혁신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스테이블코인 발행·회수가 민간 기업에 맡겨져 있어 규제가 불가능하다. 규제받지 않는 스테이블코인이 대규모로 유통되면 통화정책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탈세와 자금세탁, 국부 유출 등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장단점 때문에 한국 정부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스테이블코인과 CBDC 모두 한국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CBDC는 실명제 때문에 국내 수요가 없어 흥행에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스테이블코인은 해외 수요가 많지 않을 수 있다. 원화가 국제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 봐야 국제적으로 외면받기 십상이다.
일각에서는 타협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 총재가 민간 기업·중앙은행이 아닌 시중은행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발행 주체가 누가 되든 민·관이 함께 논의해 디지털 화폐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키는 쪽으로 결정해야 성공할 것으로 생각된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