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업은행 전경. /산업은행 제공

한국산업은행이 'HMM(옛 현대상선) 지분 매각'을 위한 시간을 벌게 됐다. 주가 상승으로 HMM의 덩치는 커지는데 매각이 순탄치 않자, 산은은 건전성 관리를 위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산출 시 HMM 지분을 제외해달라"고 금융 당국에 요청했다.

HMM 주가가 오를수록 산은의 BIS 비율은 하락하고, BIS 비율이 하락하면 조달 금리가 높아져 정책금융 공급 여력이 쪼그라든다. 이 때문에 금융 당국은 3년간 예외 적용을 허용키로 했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전날 산은의 'BIS비율 산출 예외 조치 요청'에 대해 비조치 의견서를 발급했다. 비조치 의견서는 금융 당국이 유권 해석을 거쳐 '제재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문서다.

비조치 의견서엔 HMM의 지분 가치가 산은 자기자본의 15%를 초과하더라도, 초과액에 대해선 위험가중치를 적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금감원은 "산은이 정책은행이라는 특수성에 따라 정부의 결정에 의해 HMM 주식 취득이 이루어졌고, 이를 독자적으로 처분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비의도적 사건(주가 상승)으로 산은의 HMM에 대한 출자 금액이 은행 자기자본의 15%를 초과해 위험가중치를 적용하는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며 "향후 지분 매각 추진 절차에 소요될 시간 등을 고려하여 한시적(3년)으로 예외 적용한다"고 했다.

그래픽=정서희

산은은 HMM 지분 36.02%(3억6919만주)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BIS 규정상 은행이 자기자본 대비 특정 기업 지분을 15% 이상 보유하면, 15%가 넘는 지분에 위험가중치 1250%를 매긴다. HMM 주가는 이날 오전 11시 기준 2만3200원으로, 이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HMM 지분 총액은 8조5652억원이다. 이는 지난 1분기 말 기준 산은 총자본(47조7045억원)의 17.9%로, 15%를 넘어서는 규모다.

BIS 비율은 위험 가중 자산이 자기자본에서 차지하는 비율인데, 위험 가중치가 높아지면 위험 가중 자산의 규모가 커져 BIS 비율이 낮아진다. 강석훈 전 산은 회장은 지난 4월 "HMM 주가가 2만5000원을 넘어가면 현재 13% 후반인 BIS 비율이 위험해진다"며 "BIS 비율이 13% 밑으로 내려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했다. 금융 당국은 BIS 비율을 13%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BIS 비율이 13% 밑으로 떨어지면, 산은은 건전성 관리에 몰두해야 하고 기업 대출을 늘리기 어려워진다. 통상 BIS 비율이 0.01%포인트 하락할 때마다 대출 여력이 약 2500억원 감소한다는 분석도 있다. 산은의 BIS 비율이 13%로 낮아지면 자금 공급 여력은 2조원 넘게 줄어들 수 있는 셈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HMM 주가 상승으로 산은의 BIS 비율이 크게 낮아질 우려가 커 즉각 조치를 취했다"며 "산은의 정책금융 공급이 원활히 이뤄지기 위해선 예외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산은 관계자는 "HMM 매각에 대한 입장은 변함이 없다"며 "관계 기관과 충분한 협의를 거친 후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건전성 관리에 숨통이 트인 산은은 정책금융 공급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산은은 50조원 규모의 첨단전략산업기금을 조성해 반도체와 바이오, 인공지능(AI) 산업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