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정서희

금융감독원이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편면적 구속력'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국정기획위원회에 보고했다. 현재는 금감원의 분쟁 조정안이 '권고'에 불과해 금융 소비자는 동의했으나 금융사가 거부하면 무효가 된다. 분쟁 조정 결정에 구속력을 부여해 금융사는 무조건 따르게 하는 것이 이 제도의 핵심이다.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취지라는 설명이나, 재판 청구권을 침해하고 블랙 컨슈머(악성 소비자)가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반대 여론도 상당하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윤석열 정부에서도 검토됐으나, 실제 법 개정까지 이뤄지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전날 국정기획위 업무보고에서 분쟁 조정에 대한 편면적 구속력을 도입하는 방안을 보고했다. 금감원은 내부 조직인 금융소비자보호처(금소처)를 떼 별도로 분리하는 정부의 조직 개편안에 사실상 반대의 뜻을 밝히며, 금소처의 역량을 제고하겠다는 취지에서 이런 방안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편면적 구속력은 금감원의 분쟁 조정안을 민원인이 수락하면 금융사의 수락 여부와 관계없이 '재판상 화해'의 효력을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금융회사는 소송을 제기할 수 없으며 무조건 조정안을 따라야 한다. 편면적 구속력 도입 논의는 지난 2020년 문 정부에서 수면 위로 올랐다. 금융사들이 금감원이 재조사해 제시한 외환 파생상품 키코(KIKO) 분쟁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자, 윤석헌 전 금감원장은 편면적 구속력 도입을 추진했다. 당시 금소처장이 현재 국정기획위 경제 1분과 위원인 김은경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다.

제동을 건 것은 금융위원장이었다.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은 "소비자 보호 측면에선 이해가 되지만 헌법에서 보장하는 재판상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 맞느냐 하는 의문도 있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후 윤 전 원장이 물러나면서 논의는 흐지부지됐다.

2022년 땐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 대통령이 편면적 구속력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후 윤 정부 출범 후 민주당에서 관련 법안을 발의했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당시 금감원은 "금융사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해 조정제도의 본질에 반할 우려가 있다"는 반대 의견을 소관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에 전달했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깃발이 휘날리는 모습./뉴스1

편면적 구속력 도입을 반대하는 주장의 주된 근거는 '금융사의 재판 청구권 침해'다. 재판받을 권리는 헌법 제27조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다수의 금융투자상품 불완전판매 분쟁 조정 사건을 맡았던 한 변호사는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분쟁의 조정을 심의·의결하기 위한 기구인데, 조정은 당사자 간 '합의'가 기본 원칙이다"라며 "분조위의 조정안이 법원의 판결과 달랐던 사례가 꽤 있는데, 금융사가 재판을 받을 권리를 무조건 박탈하는 것은 문제다"라고 했다. 민원 및 소액 분쟁이 빈번한 금융사는 배상을 요구하는 분쟁 조정 신청이 늘고, 블랙컨슈머가 증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편면적 구속력 도입을 찬성하는 이들은 '소액' 분쟁으로 한정할 경우 실익이 크지 않아 금융사들이 우려만큼 분쟁 조정 신청이 급증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정기획위는 소액 기준으로 "소액사건심판법상 소액 금액 3000만원보다 적은 1000만원 또는 2000만원으로 할 수 있다"며 구체적 기준을 제시했다. 최병규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금감원 분쟁 조정 결정과 편면적 구속력 인정에 대한 연구' 논문에서 "금융회사와 일반 소비자 간의 정보력 격차, 경제적·지적 능력의 차이를 고려할 때 분쟁 조정 결정에 편면적 구속력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다만 금융사도 국민으로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인정되므로 그를 제한할 땐 신중해야 한다. 1000만원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적합하다고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