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손해보험이 5년 전 발행한 9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권 조기상환(콜옵션)이 금융감독원 제동으로 연기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10년 만기로 발행되는 후순위채는 발행 5년 뒤 조기상환하는 것이 시장의 오랜 관례다. 투자자들도 5년 뒤 조기상환될 것으로 생각하고 투자한다. 하지만 금감원이 조기상환을 불허하면서 이러한 신뢰가 깨졌다. 롯데손보는 900억원을 제때 변제할 수 없는 회사라는 인식이 시장에 부각된 것이다. 지난해부터 롯데손보 매각을 추진 중인 최대주주 JKL파트너스는 악재를 떠안게 됐다.
금감원이 롯데손보의 조기상환을 불승인한 이유는 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비율(킥스) 때문이다. 킥스는 보험사가 보험금을 제때 지급할 수 있는지 평가하는 지표다. 이 비율이 하락하면 계약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금융 당국은 킥스를 150% 이상 유지하도록 권고하고, 150% 이상일 때만 후순위채 조기상환을 허용한다. 롯데손보의 킥스는 지난해 말 154.6%에서 지난 3월 말 150% 미만으로 하락하며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롯데손보는 시장의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금감원에 정면 반발하는 악수를 두면서까지 조기상환 절차를 개시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유감을 표하며 자본확충을 통해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 이상 조기상환은 불가하다고 못을 박았다. 결국 롯데손보는 조기상환을 이행하려면 당장 자본확충에 나서야 하는 수밖에 없게 됐다. 금감원 승인 없이는 조기상환을 할 뾰족한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롯데손보는 900억원을 조기상환한 이후에도 킥스를 150%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킥스는 가용자본을 요구자본으로 나눈 값이다. 요구자본이 그대로라면, 가용자본을 늘려야 킥스가 높아진다. 지난해 말 사업보고서를 기준으로 보면, 롯데손보가 킥스를 1%포인트 높이기 위해서는 가용자본을 176억원 늘려야 한다.
지난 3월 말 기준 롯데손보의 킥스는 150% 미만인데, 정확한 수치는 공시되지 않았다. 148%라고 가정하면 조기상환에 투입되는 900억원을 포함해 1250억원 이상의 가용자본을 확충해야 한다. 킥스가 145%라면 1700억원, 140%라면 2600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금감원은 롯데손보의 킥스가 기준인 150%보다 "현저히 미달한다"라고 했고, 롯데손보는 "소폭 부합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롯데손보는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사모 후순위채 발행을 통해 자본을 확충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후순위채를 발행해 조달한 자본은 킥스를 높여주는 가용자본으로 인정된다. 후순위채를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900억원을 차환하겠다는 뜻이다. 다만, 롯데손보는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롯데손보가 가용자본뿐만 아니라 기본자본도 확충해야 한다는 점이다. 기본자본은 자본금과 이익잉여금 등 보험사의 핵심 자본인데, 지난해 말 롯데손보의 기본자본은 -275억원으로 직전 분기(1988억원)에서 급감했다. 기본자본으로만 계산한 킥스는 -1.6%다.
금융 당국이 경영실태평가에서 기본자본 킥스를 의무 준수 기준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롯데손보는 결국 기본자본을 늘려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기본자본을 늘리려면 영업을 잘해 순이익을 늘리거나 유상증자를 하거나, 조건부자본증권을 발행해야 한다. 후순위채 발행을 통해 조달한 자본은 기본자본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순이익이 단기간 급증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는 유상증자다. 하지만 유상증자는 매각을 추진 중인 최대주주 사모펀드의 이해관계와 상충된다. 유상증자를 하면 롯데손보에 추가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롯데손보가 예외모형을 적용한 것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롯데손보는 보험사 중 유일하게 지난해 말 결산에서 금융 당국이 제시한 원칙모형이 아닌 자사에 유리한 예외모형을 적용했다. 롯데손보가 원칙모형을 적용하면 킥스는 127.4%로 하락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롯데손보의 조기상환 연기는 파급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번 조기상환 사태를 계기로 롯데손보의 자본적정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신용도에는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9일 "이번 조기상환 연기는 신용사건으로 간주되지는 않는다"라면서도 "신뢰 저하를 야기하고 결과적으로 자본시장 접근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