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보험사의 기본 자본을 중심으로 건전성을 평가하기로 하면서, 보험사들의 건전성 방어가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보험사들은 지금껏 신종자본증권·후순위채 발행 등으로 보완 자본을 늘려 건전성을 관리했는데, 이제는 부담이 더 큰 기본 자본 확충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기본 자본이 늘어나려면 순이익이 늘어야 한다. 하지만 치열해진 경쟁 속에서 단기간에 순이익을 높이기 쉽지 않다. 배당을 축소하거나 유상증자를 하는 방법도 거론되지만, 기업 가치 제고(밸류업) 정책에서 역행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2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 당국은 지난달 보험개혁회의를 열고 기본자본 지급여력(킥스) 비율을 의무 준수 기준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경영실태평가에서 금융 당국이 제시한 기본자본 킥스 비율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적기시정조치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새 회계제도(IFRS17) 도입 이후 보험사의 건전성은 킥스 비율로 평가된다. 킥스 비율은 가용 자본에 요구 자본을 나눠 계산한다. 이 비율이 높을수록 건전성이 좋다고 평가되는데, 금융 당국은 150% 이상을 유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킥스 비율을 높이려면 분모인 요구 자본을 줄이거나, 분자인 가용 자본을 늘려야 한다. 보험사들은 신종자본증권·후순위채 발행을 통해 분자인 가용 자본 중에서도 보완 자본을 늘렸다. 지난해 보험업권의 자본증권 발행액은 8조7000억원으로 전년(3조2000억원) 대비 272% 상승했다.
금융 당국은 이러한 자본 확충 부담을 줄이기 위해 킥스비율 감독 기준을 현행 150%에서 10~20%포인트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킥스비율이 하향 조정되면, 이와 연동된 해약환급금준비금 적립 비율에 대한 부담도 줄어들 전망이다.
금융 당국은 동시에 기본자본을 중심으로 한 킥스비율을 도입하기로 했다. 기본자본은 대규모 영업 손실을 기록하는 등 위기 상황일 때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사용하는 핵심 자본이다. 반면 보완자본인 후순위채 등은 만기와 상환이 있는 일시적인 자본에 가깝다.
보험업계는 기본자본 킥스비율을 통해 건전성이 우수한 보험사가 어디인지 '옥석 가리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기본자본 확충의 난도가 높아 규제의 강도는 더 세졌다고 판단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번 규제를 통해 그동안 기본자본이 튼튼한 보험사가 어디이고, 가용자본으로 버틴 보험사가 어디인지 드러날 것"이라고 했다.
기본 자본을 늘리려면 영업을 잘해 순이익이 늘어나면서 이익잉여금이 많아져야 한다. 이익잉여금은 보험사의 순이익에서 배당금 등을 제외하고 남은 유보된 금액을 뜻한다. 하지만 단기간에 순이익을 늘리기는 쉽지 않다. 영업력과 자본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중소형 보험사에는 직격탄이 될 수 있다.
결국 기본자본 킥스비율 도입으로 보험사의 배당 여력이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우려가 나온다. 배당금은 이익잉여금에서 나온다. 기본자본 킥스비율을 맞추기 위해 이익잉여금을 더 많이 쌓아야 하는 보험사 입장에선, 배당 축소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유상증자 역시 기존 주주들의 지분 가치가 희석돼 쉬운 선택지는 아니다.
금융 당국은 기본자본 킥스비율의 감독 기준을 밝히지 않은 상황이다. 보험업계에서는 70% 안팎이 될 것으로 전망하는데, 당장 중소형 보험사 여러 곳이 기준치를 넘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 기준 기본자본 킥스 비율이 70% 미만인 생명보험사는 KDB생명(24.8%), 푸본현대생명(43.1%), iM라이프(12.5%), 처브라이프생명(53.7%) 등 4곳이다. 특히 생명보험 '빅3'로 꼽히는 한화생명은 73.8%로 간신히 예상 기준치를 넘어서고 있다. 손해보험사 중에서는 현대해상(57.5%), 흥국화재(53.1%), 롯데손해보험(-1.6%), MG손해보험(-7.4%), 하나손해보험(42.7%)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