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5일 서울 중구 미래에셋센터원빌딩에서 권성준 FM한국지사 대표가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 장련성 기자

"팩토리뮤추얼인슈어런스컴퍼니(FM)가 190여년 동안 지켜온 하나의 철학은 '모든 사고는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보험사는 과거 통계에 기반해 미래에도 비슷한 확률로 사고가 발생할 것이라 생각하고 보험료를 책정한다. 반면 FM은 사고 발생 확률을 낮추기 위해 고객에게 위험관리 전략을 제공하고 있다. 기업을 대상으로 한 전 세계 보험시장에서 FM이 최고가 된 이유다."

권성준 FM한국지사 대표는 지난 2월 25일 서울 중구 미래에셋센터원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FM은 안전공학을 중심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로 성장해 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보험사는 사고가 발생하면 손해액을 산정한 뒤 보험금을 지급하는 회사다. FM은 반대로 생각했다. 기업에게 중요한 것은 보험금이 아니라 사고 예방이라는 것이다. 사고가 나지 않으면 보험사도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보험사인 FM이 1835년 설립 이후부터 사고·재해를 예방하는 안전공학 연구에 몰두했고, 현재는 세계 최대 재물보험사로 성장했다.

FM의 핵심 인력도 금융 전문가가 아닌 안전공학 엔지니어다. 전 세계 FM 직원 5600여명 중 엔지니어는 1980명에 달한다. 화재·강풍·폭발·홍수 등 사고가 발생했을 때를 가정하고 실험·연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연구소 'FM 리서치 캠퍼스'도 핵심 역량 중 하나다.

보험사로서는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FM이 2022년 7월 금융 당국의 본허가를 받고 한국에 진출했다. FM은 매출을 위해 고객 숫자를 늘리기보다 FM의 철학을 실현할 수 있는 동반자를 찾고 있다.

20년 가까이 국내 보험사에서 일했던 권성준 FM한국지사 대표도 이러한 철학에 반해 FM에 합류했다. 권 대표는 "지금껏 고객사에 위험관리를 해야 한다고 제언했지만 '어떻게'라는 부분에서는 할 말이 없었다"며 "FM은 사고예방을 실현하기 위해 190년 동안 쌓아 온 역량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어 "당장 한국에서 고객이 늘어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한국 사회가 안전해질 수 있도록 컨설팅의 저변을 넓혀가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다음은 권성준 대표와 일문일답.

―FM이 어떤 회사인지 잘 모르는 독자들이 많다.

"FM을 FM답게 만드는 것은 위험관리에 대한 철학이다. 보험사들은 과거 사고 발생 통계를 기반으로 미래에도 유사한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보험료를 책정한다. 하지만 FM은 모든 사고는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객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과학적 연구를 토대로 위험관리 설루션을 제공하고 이에 따르도록 컨설팅을 하고 있다."

―사고를 예방하는 게 최선이라는 점은 어쩌면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다른 회사도 아닌 보험사가 컨설팅을 제공하는 것은 좀처럼 들어보지 못했다.

"모든 보험사가 사고 예방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FM처럼 할 수 있는지도 알고 있다. 다만, 하루아침에 엔지니어 수천명을 뽑아 재물보험에 특화된 설루션을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다. FM은 세계에서 가장 큰 테스트 설비(FM 리서치 캠퍼스)에서 수백명의 엔지니어·과학자가 실제 상황을 재연해 실험을 하고 데이터를 분석한다. FM이 재물보험만 하다 보니 재물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자연·인공재해에 대해서 190년 동안 연구했다. FM이 재물보험만 하다 보니 다른 보험사가 가질 수 없는 역량이 만들어진 이유다."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웨스트 글로스터에 있는 FM의 리서치 캠퍼스에서 진행된 리튬 이온 배터리 ESS 화재 실험. 리서치 캠퍼스에서는 재물 손실 예방에 대한 과학적 연구와 소방·방재 관련 제품의 신뢰성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FM 제공

―한국에 진출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 50년 이상 우리 부모님 세대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나. 덕분에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제조업 기반의 경제대국이 됐다. 반도체와 조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러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뒤를 돌아볼 여력이 없었다. 숙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부터는 안전에 신경을 써야 할 때가 됐다. FM이 이 부분에서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안전한 사회는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역량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FM이 한국에 새로운 철학을 들여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신선한 목소리를 내면 사고로 인한 희생도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보험 계약 인수 과정이 궁금하다.

"보험 계약을 인수하기 전에 엔지니어 3~4명을 사업장에 파견해 일주일 이상 점검하고, 리스크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 전략을 제공한다. 단순히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라는 수준이 아니다. 각 공장의 설비나 특성에 따라 비용 효율적으로 스프링클러를 얼마만큼 어디에 어떻게 설치하라는 구체적인 설루션이다. 개별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위험관리에 대한 요구사항도 맞추고 있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보험에 가입하려고 했는데, 보험사가 설비를 강화하라고 요구하면 고객은 당혹스러울 수 있을 것 같다. 추가 비용까지 발생해 좋아하지 않는 고객도 있을 것 같다.

"다른 보험사들은 스프링클러 설치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기업이 FM의 요구사항을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기업 입장에서는 불법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법규대로 하는데 왜 무언가를 더 해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FM은 고객이 이해할 때까지 끊임없이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 기간에 국내 기업이 FM의 철학은 이해하고 동의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고객 곁에서 과학적인 분석을 통한 설루션을 제공해 산업 전체가 개선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고객이 설루션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FM은 계약을 인수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실적 측면에서는 좋지 않은 선택 아닌가.

"FM 내부에서는 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결혼에 비유한다. 영원히 같이 가야 한다는 뜻이다. FM의 평균 계약 유지 기간은 20년 이상이다. 100년 고객도 있다. FM이 고객에게 신뢰를 보여줘야 하지만, 고객도 FM의 철학을 충분히 이해해야 계약이 성사된다. 한번 FM 회원이 되면 끊임없이 위험관리를 한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좋다. 이 비즈니스 모델로 190년 동안 성장했고, 기업을 고객으로 한 전 세계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보험사가 됐다."

지난 2월 25일 서울 중구 미래에셋센터원빌딩에서 권성준 FM한국지사 대표가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 장련성 기자

―국내에서 어떤 분야의 기업을 주요 고객으로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FM은 제조업 전반에 대해서 경쟁력이 있다고 믿는다. 특히 관심 있게 살펴보는 분야는 2차 전지다. 배터리 제조업체뿐만 아니라 배터리 제조·판매 프로세스에 관여하는 부문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에너지저장장치(ESS)와 관련해 10여년 전부터 위험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준을 잘 만들어 놨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FM은 한국에 있는 기업과 거래를 하려고 온 것이 아니다. FM은 계약자 잉여금이 223억달러(약 32조원)다. 계약 하나에 일희일비하며 돈을 벌고 싶은 게 아니다. 당연히 고객에게 도움을 주겠지만, 한국 기업사회의 안전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 현재도 국내에서 가장 큰 시험설비를 운영하는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과 함께 화재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가진 위험관리 기준을 개선하겠다는 방향으로 접근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