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국회 정무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이 금융감독원의 영장 없는 계좌 추적 권한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현행법상 금감원은 영장 없이 계좌를 추적할 수 있고, 계좌 소유주에게 이 사실을 통보하지 않아도 된다.

5일 국회에 따르면 정명호 국회 정무위 수석전문위원은 최근 작성한 금융실명제법 개정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개정안의 필요성은 적법절차원칙을 통한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보장 측면과 금감원 등의 거래정보 등 요구 권한에 대한 남용 방지 필요성, 다른 기관과의 형평성 등의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다"고 했다.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금융실명제법 개정안엔 금융 당국의 계좌추적 사실을 계좌 소유주에게 통보하는 내용이 담겼다.

정 위원은 보고서에서 헌법재판소가 2022년 7월 사후 통보 절차가 포함되지 않은 통신자료 조회에 대해 '개인의 자기 정보 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를 들어 전원 일치 의견으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는 점을 언급했다. 정 위원은 "이런 헌재의 결정을 감안했을 때 금감원 역시 계좌추적을 한 뒤 소유주에게 통보하는 것이 헌재 결정에 부합한다"고 했다.

정 위원은 검·경과 감사원 등 계좌추적 권한이 있는 다른 기관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했다. 검·경은 영장을 발부받아 계좌추적을 할 수 있으며, 감사원은 계좌추적을 한 뒤 계좌 명의자에게 이 사실을 통보해야 한다. 다른 기관과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금융실명제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또한 "금감원의 금융회사 검사나 불공정거래 조사 과정에서 영장 없이 거래정보 등이 제공된 이후 검찰 등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 또는 고발 등이 이루어지는 사례가 있다"면서 "계좌 명의자에 대한 정보 제공 사실 통보를 통해 금감원의 권한 남용 우려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고 했다. 정 위원은 또 검찰 등 수사기관이 영장을 발부받지 않고 금감원을 통해 특정인의 계좌추적을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고 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뉴스1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취임 이후 금감원의 계좌추적이 2배 가량 늘었다. 천 의원에 따르면 금감원이 2022년 7월~2024년 6월까지 국내 10개 은행(국민·신한·하나·농협·카카오·토스·케이뱅크·SC제일·시티·신협)에 요구한 금융거래정보는 연 평균 1만4253건에 달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2020년 1월∼2022년 6월)의 6647건 대비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정무위 수석전문위원이 검토보고서를 통해 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한 만큼 개정안의 국회 통과 기대감도 커졌다. 전문위원은 각 상임위원회의 입법 활동 등을 보좌하는 역할을 하는 국회 공무원으로, 이들이 작성한 검토보고서는 국회 논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 위원은 다만 강제 조사권이 없는 금감원의 경우 조사에 오랜 시일이 걸려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한 계좌를 일괄 조회할 수 있는 수사기관과 달리 특정 점포에 대한 조회만 할 수 있는 금감원의 제한적 권한과 수사기관의 차이 등도 감안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