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손민균

보험업계에서 법인보험대리점(GA)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GA가 특정 보험사 상품을 판매하지 않으면 해당 보험사 매출이 급감할 정도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이제 GA가 보험사의 목줄을 쥐었다"라고 했다. GA 소속 보험 설계사는 특정 보험사에 소속된 전속 설계사와 달리 모든 보험사의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

2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GA업계는 삼성생명 상품 판매 시 설계사에게 지급되는 시책(인센티브)을 1년 뒤로 미루겠다고 일선 영업 현장에 전달했다. 보험업권의 맏형인 삼성생명 상품을 판매하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뜻으로 '보이콧'을 선언한 셈이다. 이러한 결정은 GA협회가 아닌 GA 대표들의 회의를 통해 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보이콧은 금융 당국이 제시한 설계사 수수료 개편안 때문이다. GA업계 관계자는 보험업권에서 영향력이 큰 삼성생명이 GA업계와 함께 수수료 개편안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달라는 취지에서 보이콧은 언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보험업계와 GA업계는 수수료 개편안을 논의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다.

보험업계는 불매운동이 현실화되면 파급력이 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전속 설계사 비중이 높은 보험사지만, 28만명에 달하는 GA 설계사가 상품을 판매하지 않으면 매출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초회보험료 기준 생명보험사 매출의 67.9%와 손해보험사 매출의 46.3%는 비전속 영업조직(GA·방카슈랑스 등)에서 발생했다.

GA업계의 보이콧은 처음이 아니다. 앞서 GA업계는 2023년 한화생명금융서비스가 보험대리점 자율협약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하자 한화생명에 대한 보이콧에 나섰다. 결국 한화생명금융서비스는 자율협약에 참여했다.

한국보험대리점협회 등 단체가 2022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가진 '온라인플랫폼 보험대리점 진출저지 및 보험영업인 생존권 사수를 위한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지금껏 설계사들은 특정 보험사에 위촉돼 해당 보험사 상품만 판매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제판분리(제조와 판매 분리)가 자리 잡으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보험사는 전속 설계사 규모를 줄이는 대신 상품 개발 등에 집중하고, 상품 판매는 GA가 담당하게 된 것이다. 결국 2023년 말 기준 전체 설계사 중 GA 설계사 비중은 43.4%까지 높아졌다. 반면 전속 설계사 비중은 27.2%로 줄어드는 추세다.

보험사는 GA 설계사에게 지급되는 시책을 높이는 등의 방법으로 GA에 상품을 판매해 달라고 독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매출이 떨어지면 GA에 왜 상품이 팔리지 않냐고 물어보는데, 시책이 적다거나 상품의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라며 "목표 판매량을 맞추려면 시책을 높이거나 담보를 높여야 한다"라고 했다. 그는 "GA가 보험사에 시책을 높여달라는 요구도 많이 하는데, 영향력을 생각하면 무작정 무시하기도 힘들다"라고 했다.

GA업계는 GA에 판매전문회사 자격을 부여하는 보험업법 개정안도 추진하고 있다. 독립적인 법적 지위를 부여받겠다는 뜻이다. GA가 판매전문회사로 거듭나면 보험업계 내 영향력은 더 확대될 전망이다. 반면 GA업계는 최근 금융 당국이 주도하는 보험개혁회의에 참여하지 못하는 등 보험업계에서 여전히 을(乙)이라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