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10일 파산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연합뉴스

금융 당국이 부실 금융회사 '신속 정리 제도'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신속 정리 제도는 부실 금융사를 정리할 때 주주 등 이해관계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매각 등이 가능하게 한 것이 특징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때처럼 부실이 전 금융권으로 확산하는 것을 조기에 막을 수 있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 공공기관인 예금보험공사는 올해 상반기 중 신속 정리 제도 개선 공청회를 연다. 공청회를 통해 금융권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한 후, 금융위원회가 금산법(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만들어 오는 6월 정부 입법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현재는 금융 당국이 부실 금융사 매각 전에 시정 계획안을 제출받고 이해관계자의 조정 등 사전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일종의 '패스트트랙'인 신속 정리 제도가 도입되면 이러한 절차 없이 금융 당국이 부실 금융사의 자산을 이전하거나 신속 매각할 수 있다. SVB 사태 당시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SVB가 보유한 예금 등 자산을 가교은행(임시은행)으로 빠르게 이전했고, 이로 인해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없이 부실 정리가 가능했다.

예금보험공사 전경./뉴스1

부실 금융사의 신속 정리가 가능해지면 그만큼 구조조정에 투입되는 자금도 최소화할 수 있다. 예보는 금융사가 낸 예금보험료를 적립한 예보기금을 사용해 부실 금융사를 정리하는데, 지난 2011년 저축은행 대규모 부실 사태 당시 총 27조2000억원의 기금을 투입했다. 현재까지 회수한 금액은 14조2000억원으로 절반 수준이다.

경기 침체 장기화로 건전성이 급격히 악화하고 있는 저축은행 구조조정에 대비해 신속 정리 제도 도입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린다. 금융권 관계자는 "올해 저축은행 구조조정이 가시화될 수 있는 만큼 정부의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했다.

예보는 올해 저축은행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할 계획이다. 예보는 업무 계획에서 "저축은행 경영 실적 및 재무지표 등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매 분기 업무보고서 등을 토대로 취약 저축은행에 대한 사전 분석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뱅크런 대응을 위해 조기 경보 체계도 구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