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하정우를 광고모델로 발탁하며 연 매출 600억원을 기록한 아트테크(예술과 재테크의 합성어) 업체 갤러리K가 폰지사기(다단계 금융사기)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갤러리K는 약속한 연 7~9%의 수익과 원금 보장을 지키지 않았다. 갤러리K 대표 김모씨는 잠적했고, 피해 규모는 작게는 수백억원, 많게는 1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갤러리K의 사업모델은 간단하다. 투자자들이 갤러리K를 통해 미술품을 구매하면, 갤러리K가 해당 그림을 기업·병원 등에 대여하고 수익을 내 투자자와 나눠 갖는다. 투자자가 계약 종료를 알리면 대여했던 미술품을 재판매해 투자금(원금)을 돌려준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원금 반환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갤러리K가 신규 투자금을 기존 투자자의 원금으로 돌려막는 폰지사기를 벌였다는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피해자들은 특히 갤러리K 투자를 추천·권유한 소위 '아트딜러'들이 사기에 적극 가담한 것이라며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계약 1건당 최대 15%를 아트딜러에게 지급하는 비정상적인 수수료율 체계 때문이다. 아트딜러가 갤러리K의 수익구조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투자를 추천해 돈을 벌었다는 취지다. 아트딜러 일부는 "우리도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일반 피해자들은 아트딜러 대다수가 재무 설계사나 보험 설계사 등 금융권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 이러한 문제를 몰랐을 리 없다고 주장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재무 설계사가 직접 모집책으로 나서 투자자를 속여 투자자들로 하여금 갤러리K에 투자하게 해 투자금을 가로챈 사건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실제 아트딜러가 갤러리K 투자를 유치하고 받아 간 수수료는 업계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다. 19일 조선비즈가 입수한 갤러리K의 영업규정을 보면, 아트딜러가 갤러리K의 '아트노믹스1' 계약을 성사시키면 3년 동안 투자금(실입금액)의 9~15.5%를 수수료로 받을 수 있다. 미술품 구매 상품인 '아트노믹스2'는 실입금액의 20~22.5%가 수수료로 지급된다. 악명 높다는 헤지펀드 매니저의 수수료가 펀드 자산의 2% 수준이다. 영업자에게 수수료를 지급하고 나면 투자자와 갤러리K가 수익을 나눠 갖는 사업모델이 작동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아트딜러가 속한 팀 단위 조직은 피라미드식으로 구성됐다. 아트딜러는 실적을 쌓으면 탑 아트딜러, 이그제큐티브 아트딜러로 진급하고 더 많은 수수료를 챙길 수 있다. 아트딜러를 모집하고 관리·감독하는 팀장급인 아트매니저는 영업을 하지 않아도 팀원이 계약을 따낼 때마다 2.24~2.94%의 수수료를 받는다.
이렇게 조직된 팀은 전국 곳곳에서 활동하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갤러리K는 갤러리K파트너스라는 별도의 영업 조직을 만들고 산하에 5개 사업단(서울·영남·호남·글로벌·1사업단)을 운영했다. 사업단 아래에 수많은 본부가 있고, 본부마다 수많은 팀들이 영업활동을 하는 구조다.
아트딜러는 자신이 아트딜러라는 사실을 밝히기보다 재무 설계사로 활동하며 갤러리K 투자를 추천했다.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무료 재무상담을 해주겠다며 고객에게 접근한 뒤 최근 인기라는 아트테크 투자법을 권유하는 식이다. 최근 수천억원의 폰지사기 피해가 예상되는 PS파이낸셜의 영업 방식과 판박이다. (본보 2025년 1월 23일 자 <"미래에셋이라 믿었는데"… 소속 보험설계사 2000억 PS파이낸셜 사기 연루>)
12년 동안 다녔던 회사에서 퇴직한 A씨가 2020년부터 갤러리K에 총 3억원을 투자하게 된 것도 SNS를 통해 무료 재무설계 상담 광고를 접하면서다. 이곳에서 만난 재무 설계사이자 보험 설계사는 변액종신보험 가입을 권유했으나, A씨가 거절하자 갤러리K 상품을 추천했다고 한다. A씨는 "원금보장을 계속해서 강조하니까 곧바로 아트노믹스 상품 설명을 들었다"라며 "계약이 끝나면 투자금액 전부를 돌려준다는 설명을 들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