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뉴스1

우리금융지주(316140)가 동양생명·ABL생명 인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사회 보고 등 절차를 준수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사외이사 거수기' 비판이 일고 있다. 금융감독원도 이사회의 경영진 견제 역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사안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임기 만료를 앞둔 사외이사의 물갈이 인사나 정진완 우리은행장의 이사회 진출 등 이사진 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금융 사외이사 중 정찬형 이사회 의장이 6년 임기를 끝으로 오는 3월 물러날 전망이다. 정 의장은 과점주주 중 한국투자증권 추천 인물로, 한투 추천 인물이 뒤를 이을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신요환(연임), 윤인섭(연임), 윤수영, 지성배 사외이사가 오는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지난해 선임된 이은주, 박선영 이사만 임기를 남겨뒀다.

이사진들은 우리금융의 동양·ABL생명 인수 결정 과정에서 거수기 역할을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우리금융 내규에 따르면 인수·합병(M&A) 추진 시 리스크관리위원회의 사전 심의를 거쳐 이를 이사회 의사결정에 반영해야 한다. 그러나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리스크위원회를 열기도 전에 M&A 이사회 일정을 결정했다. 이후 주식매매계약 당일 리스크위원회와 이사회를 20분 간격으로 진행했다.

우리금융은 이사회 개최 전 개별 이사진에게 M&A 안건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금감원은 이런 해명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우리금융 정기 검사에서 당시 회의록을 분석한 결과, 이사진들이 별다른 논의를 하지 않고 M&A 안건을 통과시킨 점을 확인했다. 사전에 안건에 대한 설명을 했더라도 회의에서 이사들 간 의견 교환 없이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것은 '경영진 견제'라는 이사회 역할을 방기했다는 것이 금감원의 시각이다.

정진완 우리은행장. /우리은행 제공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임기 내내 금융지주사의 건전한 지배구조 확립을 위해 이사회의 경영진 감시 강화를 주문했다는 점에서 금감원은 이번 우리금융의 이사회 거수기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임종룡 회장 입장에서도 '거수기'로 찍힌 사외이사진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쇄신 차원에서라도 사외이사진의 물갈이가 필요한 상황이다.

다만 우리금융은 지배구조상 사외이사를 교체하기 쉽지 않은 여건이다. 우리금융 사외이사는 과점주주인 한투, 푸본현대생명, 키움증권, 유진 프라이빗에쿼티(PE), IMM PE가 추천하는 인사로 채워진다. 이 중 IMM PE가 최근 우리금융 지분을 전량 매각하면서 IMM PE 추천 몫인 지성배 이사는 물러날 전망이다. 오는 3월 정 의장을 포함해 2명의 사외이사는 교체할 수 있다. 나머지 과점주주 추천 4인은 주주사와 협의 없이 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오는 3월 주주총회에서 정진완 행장을 비상임이사로 선임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비상임이사는 비상근 등기임원으로 이사회에 참여한다. 우리금융 비상임이사는 2023년 3월 이원덕 전 우리은행장이 사임하면서 현재까지 공석이다. 후임인 조병규 전 행장은 이사회에 배제된 채 임기를 마쳤다. 임 회장의 독주 체제가 2년 가까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4대 금융지주 가운데 은행장 등 다른 경영진이 이사회에 참여하지 않는 곳은 우리금융이 유일하다. 우리금융 이사회 운영 문제가 드러난 만큼 2인자인 정 행장이 이사회에 참여해 임 회장을 견제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우리금융 내규를 어긴 이사진에 대해 처벌이나 제재를 할 법적 근거는 없다"면서도 "금융지주 사외이사 거수기 문제에 대해선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