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시중은행이 부실을 대비해 쌓은 대손충당금 잔액 규모가 8년 만에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들은 경기침체 등으로 대출의 질이 악화할 것을 우려한 금융 당국 요구에 충당금을 꾸준히 늘려 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연체율이 상승하고 있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4대 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의 대손충당금 적립 잔액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8조1320억원으로, 전년 말 대비 0.84% 늘었다. 2021년 9월만 해도 5조716억원 수준으로, 몇 년 사이 크게 늘어났다. 잔액 기준으로는 2016년 9월 이후 8년 만에 가장 높다.
대손충당금은 금융사가 회수가 불가능하다고 예상되는 채권을 미리 비용으로 처리하는 회계 계정이다. 충당금을 많이 쌓는다는 것은 그만큼 미래 예상되는 부실 규모가 커졌다는 이야기다.
4대 은행은 그동안 대출의 질이 악화할 것을 우려한 금융 당국의 요구에 맞춰 충당금을 늘려왔다. 대손충당금 적립잔액은 2023년에만 1조6329억원 늘었다. 일반적으로 은행이 연말에 대손충당금을 많이 쌓는 것을 고려하면 지난해 대손충당금 증가액은 2023년을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인다.
시중은행이 대손충당금을 늘리는 것은 빚을 갚지 못하고 연체하고 있는 기업과 금융 소비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국내 은행에서는 매월 2조5000억원이 넘는 신규 연체가 발생했다. 8월에는 3조원의 신규 연체가 발생하기도 했다.
11월 말 기준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0.52%로 전년 11월 말 대비 0.06%포인트 상승했는데, 그중 기업대출 연체율은 0.6%로 0.08%포인트 올랐다. 특히 상대적으로 취약한 부문인 중소기업대출에서 연체율이 0.75%, 개인사업자대출에서 연체율이 0.71% 올라 각각 0.14%포인트, 0.15%포인트 올랐다.
금융 당국은 또다시 충당금 확충을 주문했다. 금융감독원은 "연체채권 정리규모 증가에도 신규연체가 동일한 수준으로 증가해 연체율이 상승했다"며 "대내외 불확실성 및 내수경기 회복 지연 등으로 연체율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어 취약부문에 대한 충당금 적립 확대 등 충분한 손실흡수능력을 유지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부실률 증가에 따른 충당금 확충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지만 대손충당금 적립률은 하락하고 있다. 부실채권 대비 대손충당금 적립 비율 평균은 2023년 12월 246.35%에서 지난해 9월 205.43%로 40%포인트 낮아졌다. 은행들이 대손충당금을 역대급으로 쌓았음에도 대손충당금 적립률은 되려 하락하는 이유는 그만큼 부실채권이 늘어나는 속도가 충당금 적립 속도보다 가파르게 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들로 인해 대손충당금 확충에 대한 이야기는 연초부터 꾸준히 나오고 있다. 올해 '범금융 신년인사회'에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금융권은 충당금 확충 등 위기 대응 능력을 강화하고 차분하게 대응해 달라"고 강조했다.
금융위원회는 은행의 대손충당금과 대손준비금 적립 수준이 부족하다고 판단할 경우 특별대손준비금 제도 등을 통해 대응할 수 있다. 다만 은행들의 리스크 관리 비용이 계속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동시에 생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고환율과 경기 악화 등이 기업에 리스크로 작용하고, 그렇게 되면 대손충당금을 더 쌓아야 하는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다만 차주들의 전반적인 연체율이 오르고 있어 이런 상황이 당분간 계속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