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 /우리금융 제공

금융감독원의 우리금융지주·우리은행 정기 검사 결과 2300억원 규모의 부당 대출 등 총체적인 경영부실이 드러나면서 우리금융이 추진 중인 동양·ABL생명 인수·합병(M&A)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우리금융이 금감원 경영실태평가에서 3등급을 받으면 동양·ABL생명 인수는 사실상 불발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금융의 동양·ABL생명 인수 결정 과정에서 절차상 하자가 발견됐다는 점도 금융 당국의 인수 승인 심사 과정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원에서 우리금융 및 우리은행 정기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금감원 검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은행에서 지난 5년 동안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 친인척 대출 730억원을 포함해 총 2300억원의 부당 대출이 집행됐다.

금감원은 지난해 우리금융의 동양·ABL생명 인수 과정에서 문제점이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우리금융 내규에 따르면 M&A를 추진할 때는 이사회 내 리스크관리위원회의 사전 심의를 먼저 열고 이후 사전 심의 내용을 이사회 의사 결정에 반영해야 한다.

그러나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리스크위원회 개최 전에 이미 이사회에 안건으로 동양·ABL생명 인수를 올렸다. 또 동양·ABL생명의 대주주인 중국 다자보험과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하는 당일 리스크위원회와 이사회를 20분 간격으로 열었다. 임 회장이 이미 동양·ABL생명 인수를 결정하고 리스크관리위원회와 이사회를 형식적으로 개최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금감원은 우리금융과 다자보험의 동양·ABL생명 주식매매계약서에 금융 당국이 우리금융의 보험사 인수를 허가하지 않을 경우 계약금을 돌려받지 못하도록 한 조항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금융 당국이 동양·ABL생명 인수를 승인하지 않을 경우 우리금융은 계약금 약 1550억원을 날리게 된다. 그러나 우리금융은 이를 이사회에 정확히 고지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금감원이 보통주자본비율(CET1) 문제를 지적한 점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금감원은 우리금융과 KB금융지주가 그룹 내 숨겨진 부실 위험까지 포함해 리스크를 면밀하게 측정·관리하지 않았다면서 이를 모두 반영 시 CET1가 10~20bps(basis point·1bp=0.01%포인트)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CET1은 금융사의 위기대응 능력을 보여주는 건전성 지표다. 금융 당국은 CET1도 경영실태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우리금융의 작년 9월 말 기준 CET1은 11.96%로 4대 금융지주 가운데 유일하게 금융 당국 권고치인 12%를 밑돌았다. 지난해 4분기 달러 강세로 우리금융의 CET1는 전분기보다 더 떨어졌을 것으로 추산된다. 보통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르면 금융사의 CET1가 0.01~0.03%포인트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4분기에만 150원 가량 올랐다. 문제는 우리금융이 1조5000억원이 넘는 돈을 인수자금으로 쓰면 CET1은 그만큼 낮아질 수밖에 없다. 낮은CET1도 우리금융의 동양·ABL생명 인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이번 검사 결과는 금융 당국의 동양·ABL생명 인수 인가 심사에 반영될 전망이다. 우리금융은 지난 16일 금융 당국에 인수 승인 신청서를 제출했다. 심사가 개시되면 금융 당국은 2개월 안에 승인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우리금융지주의 동양생명 및 ABL생명 인수 과정 중 발견딘 이사회 보고 미흡 사례. /금융감독원 제공

박충현 금감원 은행담당 부원장보는 전날 사전 브리핑에서 이번 검사 결과를 토대로 우리금융에 대한 경평실태평가 등급을 최대한 빨리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 부원장보는 "지난해 정기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금융의 M&A 심사도 해야 하지 않나 싶다"고 했다.

금융 당국의 M&A 승인 관련 규정에 따르면 금융지주회사와 자회사 등의 경영실태 평가 결과 종합평가 등급이 2등급 이상에 해당해야 한다. 이번 경영실태평가부터 내부통제가 별도 평가 부문으로 분리되고 평가비중도 기존 5.3%에서 15%로 3배 이상 대폭 상향 조정됐다. 대대적인 내부통제 부실이 드러난 만큼 직전 검사 때 2등급이었던 우리금융의 평가 등급이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우리금융이 M&A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내규를 어긴 것이 드러난 점과 CET1이 당국 권고치를 밑도는 점도 인가 심사에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보험사 인수가 무산되면 임 회장이 추진하는 비은행 포트폴리오 강화 계획도 좌초된다. 우리금융은 4대 금융그룹 중 은행 의존도가 가장 높아 비은행 계열사를 하루빨리 인수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다만 경영실태평가가 3등급이어도 금융위의 판단에 따라 우리금융의 동양·ABL생명 인수를 인가할 수도 있다. 금융지주회사감독규정에 따르면 경영실태평가 또는 기준 등에 미달하는 경우에도 자본금 증액, 부실자산 정리 등을 통해 일정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고 금융위가 인정하는 경우 경영 상태가 건전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경영실태평가에서 3등급을 받더라도 금융위가 우리금융의 건전성을 '개선 가능한 상태'라고 판단한다면 인수를 최종 승인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금융권에선 금융위가 1조5493억원에 달하는 중국-한국 기업간 빅딜을 쉽게 불허하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일각에선 건전성 및 내부통제 강화 등을 조건으로 한 '조건부 승인' 가능성도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