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경기 의정부에서 사용된 지역화폐 876억원 중 사교육비는 218억원(25%)으로, 일반·휴게음식점(249억원·28%)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2019~2022년으로 범위를 넓혀도 지역화폐 사용량 1위는 한식(517억원)이었고, 2위가 보습학원(223억원)이었다. 예체능 학원(136억원)과 외국어 학원(60억원), 기타 학원(75억원)을 합하면 500억원에 육박한다. 지역화폐가 많이 사용돼야 할 업종인 정육점(125억원)과 농축수산품(114억원)은 상위 5위 안에도 들지 못했다.
소상공인·전통시장 등 골목상권에 쓰여야 할 지역화폐가 학원가로 흘러가는 것은 일부 지역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14일 이용호 국민의힘 경기도 의원 등에 따르면, 2023년 경기도 내 지역화폐 결제액 4조2148억원 중 학원비는 9686억원(22.9%)으로 2위를 차지했다. 2022년(19.4%)보다 3.5%포인트 늘어났다. 서울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2020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사용된 지역화폐 중 19.6%(7285억원)가 사교육비로 쓰였다.
학원들도 지역화폐 사용을 장려하고 있다. '지역화폐 최고 사용처는 학원' 등 홍보 문구를 손쉽게 접할 수 있을 정도다. 전국 70여개 지점을 가진 대형 학원조차 지역화폐 사용이 가능한 가맹점으로 등록돼 있다. 이 학원의 한 달 수강비는 52만~72만원. 유명하고 규모가 큰 학원이 선호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순히 '학원도 영세사업장이니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지역화폐는 설날인 1월과 추석인 9월에 혜택이 늘어난다. 명절을 맞아 서민 부담을 덜고, 전통시장 매출을 늘리기 위해 각 지자체가 할인율을 높이기 때문이다. 경기 수원시는 이달에만 할인율을 20%로 상향하기로 했고, 의정부시도 명절 기간에 한해 할인율을 10%로 올렸다. 지역화폐 100만원을 구매하면 현금처럼 110만~120만원을 쓸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지역화폐 혜택이 늘면 학원과 병원·약국의 매출만 커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명절을 앞두고 전통시장에서 지역화폐로 농축수산물을 구매한다는 각 지자체의 희망은 잘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23년 9월 발표된 '지역화폐 정책 변화가 소비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 분석'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부산 지역화폐(동백전) 결제액 증감률이 큰 업종은 식품과 학원, 의료·보건이었다. 지역화폐 혜택이 확대·축소되면, 이 업종의 지역화폐 소비량도 증가·감소한다는 뜻이다. 결국 소상공인을 위한다며 지역화폐 혜택을 늘리면 학원과 병원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이다.
실제 캐시백 혜택이 축소됐던 2022년 8월에는 부산의 모든 연령이 의료·보건과 학원의 지역화폐 소비량을 가장 많이(29~57%) 줄였다. 반면 추석이 있는 9월 캐시백 혜택이 확대되자 식품과 학원, 의료·보건을 중심으로 지역화폐 소비량이 37~43% 증가했다.
보고서를 낸 연구진은 "동백전의 이용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매출 증대라는 본래 취지와는 달리 캐시백 혜택을 목적으로, 보건·의료와 학원 등 고액 사용처에 집중된 경향을 보였다"라며 "지역 내 영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결국 업종별 캐시백 (혜택) 비율의 차등 적용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지역화폐 사용 업종 부동의 1위가 일반·휴게음식점인 만큼 소상공인 매출 증대의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마저도 상권이 활성화된 지역의 '맛집'이 혜택을 보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연 매출 수십억원을 올린다는 음식점과 한 지역에서 14개 가맹점을 보유한 프랜차이즈 음식점, 예약조차 힘들어 1시간 이상 줄을 서야만 한다는 맛집 등에서도 지역화폐를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역화폐 사용이 일부 업종에 한정돼 있고, 그마저도 사정이 나은 곳에서만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