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와 달러를 정리하고 있다. /뉴스1

최근 엔화예금 ‘탈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일본은행(BOJ)이 3회 연속으로 금리를 동결하면서 엔화 가치 상승 속도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된 결과로 풀이된다. 일본은 지난해 17년 만에 금리를 인상하며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끝냈다. 엔화예금은 원화를 엔화로 바꿔 예금하는 상품이다. 엔화 가치가 오르면 환차익을 얻을 수 있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은 1조214억엔을 기록했다. 지난달 말에는 9000억엔대를 기록했다 소폭 올랐는데, 11월 말 1조1100억엔보다도 8% 가까이 줄어든 수치다. 지난해 6월 1조2929억원과 비교하면 6개월 만에 21%가까이 예금 잔액이 줄었다.

엔화예금 잔액은 2023년부터 지난해까지 ‘엔테크(엔화+재테크)’ 열풍이 불며 크게 증가했다. 당시 100엔당 900원을 밑돌면서 엔화 가치가 33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달러당 원화 가격도 강세를 보이면서 856.8원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최근 10년간 100엔당 원화 환율의 평균치는 1014.3원 수준이었다.

시장에서는 엔화 상승 여력이 크지 않다고 보고 차익실현 수요가 커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끝내면서 금리를 인상했다. 지난해 7월엔 기준금리를 0.25%로 올렸는데, 3회 연속 동결 이후 지난해 말 일본은행이 추가 금리인상에 신중하다는 관측이 나온 이후 매도세가 커졌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해외 경제 상황에 대해 “앞으로 계속 불투명하다. 도널드 트럼프 차기 미국 정권의 경제정책에 관한 불확실성이 크다”며 금리인상 속도 조절을 시사했다. 일본 긴축 속도가 늦어지면서 엔화 가치 상승이 앞으로 더딜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조선DB

이뿐만 아니라 국내 정치적 상황에 따른 원화 가치 하락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100엔당 900원을 밑돌았던 엔화 가치는 비상계엄 선포부터 탄핵 사태까지 정치 불안이 이어지면서 970원대까지 오르기도 했다.

엔화 추가 상승세는 당분간 제약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물가 상승 우려로 정책금리를 예상보다 느리게, 그리고 소폭 내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엔화 약세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쿄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에 대한 엔화 환율은 지난달 말 미국 장기금리가 상승하면서 소폭 하락했다. 6일 기준으로 엔·달러 환율은 지난달 말 대비 다시 소폭 상승했지만, 추가 상승은 제약을 받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