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전경. /뉴스1

과거 '보험 브리핑 영업'을 했던 설계사는 고객으로부터 종신보험에 대한 민원이 제기됐다는 내용증명을 받았다. 그런데 이 설계사는 내용증명을 보낸 법인보험대리점(GA)에서 일한 적이 없었다. 민원을 제기했다는 사람도 자신의 고객이 아니었다. GA는 관련도 없는 설계사에게 왜 내용증명을 보냈을까.

이는 브리핑 영업을 전문으로 하는 브리핑GA가 민원을 회피하는 수법이다. 무관한 설계사에게 내용증명을 보내고, 고객에게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라며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브리핑GA를 운영했던 사람은 "설계사가 내용증명에 답변하지 않아 어쩔 수 없다고 핑계를 대려는 것이다"라며 "민원을 감당하지 못하면 회사를 폐업하고 새로운 GA를 만들어 영업하면 된다"라고 했다.

브리핑 영업을 하다 민원이 발생하면 폐업한 뒤 다시 영업하는 행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일명 'B코드(개인사업자로 활동하는 설계사에게 부여되는 코드)'를 이용한 불법 영업과 탈세까지 벌어지는 실정이다. 하지만 금융 당국은 감독은 소홀히 하면서도 브리핑 영업의 불완전 판매를 엄격하게만 인정하고 있어 소비자만 피해를 본다는 지적이 나온다.

브리핑 영업은 회사의 법정 의무교육 시간이나 학회·세미나 등에서 설계사들이 보험 가입을 권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연예인까지 동원해 행사를 마련하고, 참여자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형태로까지 발전했다.

11일 조선비즈 취재를 종합하면, 2014년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부당한 보험모집이 적발된 GA는 최근 새로운 GA를 만들어 브리핑 영업을 하고 있다. 단기납 종신보험을 '평생 복리이자를 받는 입출금 통장'으로 판매하다 민원이 많아지면 폐업하고, 다시 회사를 만들어 영업하는 수법이다. 매출 목표치를 정해 놓고 이를 달성하면 곧바로 폐업하는 브리핑GA도 있다고 한다. (본보 12월 10일 자 <보험 '브리핑 영업' 현장에선 단기납 종신이 입출금 통장 둔갑>)

브리핑GA가 폐업하면 가입자는 계약을 관리해 줄 설계사가 사라져 '미아 고객'이 된다. 금융 당국에 민원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데, 금융 당국이 민원을 받아들이는 경우는 드물다. 불완전 판매를 입증할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민원 때문에 금감원에 여러 차례 불려 갔다는 한 설계사는 "직접 자필서명을 받았기 때문에 금감원에 가서도 (민원에서) 이겼다"라며 "브리핑 영업 현장이 담긴 사진 등이 확인된 경우에만 불완전 판매가 인정되는 것 같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에는 모바일 청약을 하기 때문에 고객이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법인보험대리점(GA)이 브리핑 영업을 홍보하는 글. 버젓이 설계사 코드가 없어도 일할 수 있다고 홍보한다. /독자 제공

브리핑GA는 보험 설계사 자격이 없는 사람도 영업에 투입하고 있다. 소셜미디어(SNS)에 "설계사 코드(자격) 없이도 (영업이) 가능하다"라는 구인글이 올라올 정도다. 자격이 없는 유령 설계사나 영업 정지를 당한 설계사를 고용해 고객을 모집하고, 계약은 B코드를 가진 설계사 이름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수수료는 유령 설계사와 B코드 설계사가 나눠 갖는다.

B코드는 '탈세 전략'을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고객 모집에 참여하지 않은 B코드 설계사 이름으로 계약한 뒤, 마치 B코드 설계사에게 수수료를 지급한 것처럼 꾸며 신고하는 방식이다. 실제로는 브리핑GA가 수수료를 챙기지만, 매출로 잡히지 않아 세금을 덜 내는 것이다. 이름만 빌려준 B코드 설계사는 계약에 책임지지 않고, 금융 당국에 민원을 제기해도 불완전 판매로 인정받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브리핑GA에서 일한 대부분 설계사들도 피해를 보고 있다. 발생한 민원을 설계사에게 전가하는 것은 물론 수수료를 일부만 주고, 수수료 외 시책은 지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자격자나 경력이 부족한 설계사만 일하다 보니 이런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고 한다. 2022년에는 보험소비자연대와 설계사들이 브리핑GA를 상대로 수수료 환급 소송에서 승소한 사례도 있다.

GA업계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브리핑 영업 시스템은 한번 만들어 놓으면 계속 활용할 수 있다"라며 "브리핑 영업을 했던 사람이 다시 브리핑GA를 차려 벌 만큼 번 다음에 폐업하고, 여기서 배운 사람이 또 브리핑 영업을 하는 등 구조적 문제가 심각하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