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뉴스1

비상계엄 사태의 여파가 가상자산 업계까지 미치고 있다. 내년 예산안과 세법개정안 등 당장 산적한 민생 관련 법안을 처리해야 할 국회는 본격적인 탄핵 정국으로 접어들었다. 관련 정책을 기다리던 가상자산 업계는 또 한번 지지부진한 기다림이 시작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정기국회가 끝나는 이날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가상자산 과세 유예 등을 포함한 내년도 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비상계엄 하루 뒤인 지난 4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었으나, 계엄 사태로 일주일 가까이 밀렸다. 이날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았다면 당장 내년 1월 1일부터 가상자산 투자에 대한 과세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세법개정안이 통과됐지만, 국회는 계엄과 탄핵, 차기 대선 등의 이슈에 집중하고 있다. 그동안 가상자산 업계에서 국회를 설득하고 통과시키려고 했던 실질적인 정책들은 탄핵 이슈에 묻혀 의결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법인에 대한 가상자산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실명계좌) 발급 허용이나 토큰증권(STO) 법제화 등이 대표적이다.

앞서 업계에서는 법인의 가상자산 실명계좌에 대한 필요성이 오랫동안 제기됐다. 금융위는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가상자산위의 조언을 참고해 법인계좌에 대한 단계별 허용 가이드라인을 내부적으로 확정한 상태였으며 이달 시행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계엄 사태가 발발하면서 금융 당국은 주식·채권·단기자금·외화자금 등 기존 금융시장 안정 조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가상자산 이슈는 우선순위에서 밀린 상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제2회 디지털자산 STO 포럼 조찬 간담회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2024.11.28/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토큰증권(STO) 법제화에 대한 논의 진척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STO 법제화에 대해서는 이미 여야 합치가 이루어진 상황이었고,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각각 지난 10월과 11월 같은 내용의 STO 패키지 법안을 발의했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달 비금전재산신탁 수익증권 발행 허용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여기에 지난달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윤창현 코스콤 대표 등이 STO 법제화를 언급하면서 기대감이 커졌었다. 법인계좌 승인과 STO 법제화와 모두 증권사와 투자자, 기업의 새로운 먹거리로 관심을 모았던 시장이지만 연내는 물론 내년 상반기까지도 법제화가 불투명하게 됐다. 국회 관계자는 "비상계엄이 국회의 모든 관심을 가져가 버렸으니 가상자산 관련 법안들이 가득해도 이것부터 처리하자고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며 "최소 탄핵 정국이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무기한 연기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계엄 사태로 해외로 빠져나가는 블록체인·가상자산 기업들과 투자자들도 더 많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에서 가상자산 관련 사업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인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상자산 업계를 신경이나 쓰겠냐는 게 업계의 의견이다.

비상계엄 당일 투자자들의 '패닉셀'로 발생한 역(逆)김치프리미엄은 계엄 종료 이후에도 며칠간 1~2%대를 유지 중이다. 역김치프리미엄이란 해외거래소보다 국내거래소의 가상화폐 가격이 더 저렴한 현상을 뜻하는 말로, 그만큼 국내 가상화폐 투자시장에 대한 불안도가 높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무엇보다도 가상자산과 관련한 정책과 가이드라인 등 논의할 내용이 산적한데 시국이 안타깝다"며 "미국에서는 트럼프 당선인이 2기 행정부 출범도 전에 가상자산 정책을 다룰 인물들을 모색하는데 국내에서도 당장 대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