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지난 3일 밤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뉴스1

경찰이 비상계엄 선포 보름 전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 받아 다수의 시민단체 회원의 인적 사항을 은행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4일 확인됐다. 영장 발급 사유는 국가보안법(국보법) 위반 등인 것으로 전해진다.

윤 대통령은 전날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종북 세력 척결’을 이유로 들었다. 윤 대통령은 긴급 담화에서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했다.

국회 등 정치권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달 중순 각 은행에 5·18 민주화운동·탈북민 관련 시민단체에 소속된 회원 수십 명에 대한 인적 사항을 요구하는 내용의 금융거래 정보 제공 요구서를 제출했다. 금융실명법에 따르면 금융거래 정보는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 금융거래 조회 공문 없이는 열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한 시중은행 고위관계자는 “최근 영장을 첨부한 경찰청 안보수사대의 금융정보 요청 공문 수십 건이 접수됐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요새도 이렇게 무더기로 인적 사항을 조회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기억하는 사안”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한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계엄군과 시민들이 대치하고 있다. /뉴스1

경찰이 상시 국보법 위반 건에 대한 수사를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영장 신청 자체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비상계엄령 선포를 앞둔 상황에서 국보법 위반 혐의로 ‘무더기 개인정보조회’가 이뤄진 것이 석연치 않다는 의견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종북 세력이 국가를 교란시키고 있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한 목적에서 경찰의 무리한 수사가 진행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관계자는 “현 정부 들어 국보법 위반 혐의로 검거된 사범 수가 늘었다”라며 “비상계엄령을 일찍이 염두에 뒀던 것은 아닌지까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국보법 사범은 2019년 12명, 2020년 13명, 2021년 27명, 2022년 30명, 2023년 48명으로 증가했다.

경찰청 안보수사국 관계자는 “국보법 위반 혐의로 영장을 신청하는 것은 상시적인 업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