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저축은행 지점 모습. /연합뉴스

3년 전, 2금융권인 한 저축은행에서 4억원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를 받은 A씨(60·무직)는 최근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연장하려면 약 7500만원을 상환해야 한다고 안내를 받았다. 은행은 아파트 공시가격이 떨어졌다는 점을 상환 이유로 들었지만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은행에서는 “공시가격 변동은 큰 차이 없으니 연장이 될 것”이라고 안내했다고 A씨는 주장했다.

그는 “신규 대출도 아니고 기존 대출자인데, 게다가 3년간 신용이 변동되지도 않았고 연체한 적도 없는데 갑자기 한 달 만에 대출금 일부를 상환하라고 하니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어 난감하다”며 “정부 대출규제로 당장 살고 있는 집마저 경매에 넘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다”라고 말했다.

최근 금융 당국이 대출 수요가 몰리는 2금융권에도 추가 규제를 검토하는 가운데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가계대출 속도 조절에 나서면서 서민들의 고충이 커지고 있다. 서민들의 ‘급전 창구’로 불리는 2금융권이 신규 취급뿐 아니라 기존 대출자에게까지 부담을 주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10월 금융권 가계대출 잔액은 전달보다 약 6조원 증가했다. 특히 2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폭이 컸다. 지난달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전달 대비 1조1141억원 늘어났지만, 2금융권은 2조원 이상 늘어났다. 2021년 11월 3조원이 증가한 이후 약 3년 만의 최대 증가폭이다.

은행권이 가계부채 급증세를 완화하라는 금융 당국 주문에 대출규모 조절에 나서자 2금융권으로 풍선효과가 번진 탓이 크다. 주담대 문턱이 높아지자 중·저 신용자인 서민들이 그나마 급하게 돈을 빌릴 수 있는 2금융권을 중심으로 신용대출이 늘어난 것이다.

이 때문에 금융 당국은 2금융권에 대해서도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2금융권에도 은행권처럼 가계대출 증가 계획을 받는 방안까지 논의하는 등 강력하게 대출 옥죄기에 돌입하는 분위기다. 금융감독원은 새마을금고와 농협 등 가계부채 증가세가 두드러진 금융 회사를 대상으로 가계대출 취급 실태도 점검할 예정이다.

서울의 한 시중은행 대출 창구 모습. /뉴스1

상황이 이렇다 보니 2금융권은 자체적으로 대출 속도 조절에 나서고 있다. 보험업계 역시 주담대 물량을 줄이거나 신규 대출 중단 등 대응에 나섰는데, 삼성생명은 유주택자에 대한 주담대 취급을 중단했다. NH농협생명 역시 유주택자에 대한 주담대 신규 취급을 한시적으로 중단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A씨 같은 기존 대출자 역시 피해를 입고 있다는 점이다. A씨가 돈을 빌린 B저축은행 관계자는 “대출 만기 연장과 관련된 내용은 금융 소비자의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확인해 줄 수 없다”면서도 “최근에는 2금융권에도 가계대출이 늘어나는 분위기가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라고 답했다.

2금융권은 금리를 높이는 방식보다 ‘물량 조이기’로 가계부채에 대응하고 있다. 최근 은행들이 예대금리차(대출금리-예금금리) 확대로 금융당국뿐 아니라 정부 여당 등에서까지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2금융권 한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지침 등은 없지만 다른 곳에서 잔금대출 만기를 줄이고 신규 주담대 신청 접수를 중단하는 등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 업계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당분간 실수요자 위주로만 대출을 실행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