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정책을 결정하는데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될 ‘가상자산위원회’의 출범을 앞두고 업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일부 거래소의 점유율 독과점에 대한 조정,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승인 등 여러 사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앞으로 새로운 규제가 도입되거나, 기존 수익 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가상자산위원회에 참여할 위원들은 다 내정이 됐다”면서 “다음 달 6일 첫 회의를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가상자산위원회는 금융위원회 주도로 설치되는 민·관 자문기구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이 가상자산위원장을 맡고, 총 1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금융 당국과 학계, 법조계, 연구기관 등의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가상자산 정책을 결정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다만 가상자산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거래소들은 위원회 구성에서 배제됐다. 금융위는 지난 9월까지 가상자산위원회 구성을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한 달 넘게 시기가 늦춰졌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업비트와 빗썸 등 기존 대형 거래소들과 이해관계가 있는 인사들을 추려내는데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려 출범이 늦어졌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가상자산위원회가 곧 출범하면 지금껏 과제로 남겨졌던 여러 정책이 급물살을 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위원회가 국내 1위 거래소인 업비트의 점유율 독과점 구조를 어떤 식으로 조정할지를 가장 먼저 들여다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업비트의 점유율 독과점 문제는 그동안 정치권과 금융 당국 등에서 여러 차례 문제로 지적돼 왔다. 최근 2위 거래소인 빗썸이 수수료를 무료화하면서 업비트의 점유율도 다소 떨어졌지만, 여전히 6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업비트와 빗썸이 전체 국내 시장 거래량의 98%를 점유한 반면 소형 거래소인 코빗과 고팍스는 0%대의 점유율에 허덕이는 상황이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도 이강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업비트의 과도한 점유율은 공정거래법상 독점 상황에 해당된다”며 시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비트코인 현물 ETF의 승인 여부도 가상자산위원회가 다룰 주요 과제 중 하나로 꼽힌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이미 올해 초 비트코인 현물 ETF에 이어 이더리움 현물 ETF까지 승인한 상태다. 그러나 금융위는 지금껏 자본시장법이 규정하는 ETF의 기초자산에 가상자산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승인을 미뤄왔다.
15명의 위원 중 다수를 구성하는 민간 전문가들이 비트코인 현물 ETF의 도입에 찬성할 경우 금융 당국 역시 승인을 계속 늦추기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게다가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 역시 비트코인 현물 ETF의 승인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만약 국내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출시될 경우 가상자산 투자 수요 중 상당수가 이동해 기존 거래소들은 수익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이밖에 금융 당국이 여전히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고파이 투자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도 위원회가 들여다봐야 할 과제로 거론된다. 과거 고팍스가 운용했던 고파이는 투자자들에게 가상자산을 예치받아 운용하고 약속한 수익을 돌려주는 상품이다. 지난 2022년 미국 내 고파이 운용사가 파산하면서, 투자자들은 아직 고팍스에 맡겼던 가상자산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가상자산위원회 출범으로 기존 거래소들이 새로운 기회를 얻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국감에서 “가상자산위원회가 법인에 대한 가상자산 계좌 발급 허용 여부도 논의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만약 국내에서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가 허용될 경우 거래량이 크게 증가해 거래소들의 수익 증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미 미국에서는 하버드대학교 등 여러 대학이 기금을 비트코인에 투자하고 있다. 최근에는 주(州)정부들도 잇따라 연기금을 가상자산이나 비트코인 현물 ETF 등에 넣어 수익을 올리는 상황이다. 일본 역시 공적연금의 운용 대상 자산에 가상자산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금융 당국이 위원회를 주도하는 이상 시장에 혼란을 초래할 만한 규제나 정책 변경을 서둘러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