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은행 대출창구에서 한 시민이 상담을 받고 있다. /뉴스1

금융 당국이 디딤돌·버팀목대출 등 정책대출과 전세대출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적용하기 위한 사전 준비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전방위적인 대출 규제에도 정책대출은 오히려 늘고, 전세대출 역시 집값을 떠받치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해졌기 때문입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까지 맞물려 현재의 규제 수준으로는 가계대출 증가세를 틀어막기엔 역부족인 상황이 됐습니다.

그렇지만 신중론이 여전히 만만치 않습니다. 빚을 내지 않고선 내 집 마련이 힘든 서민·실수요자의 대출 한도가 줄어 피해를 입을 수 있어서입니다. ‘서민 주거 사다리’로 불리는 정책·전세대출에 손을 대는 것이 정부 입장에서는 부담이기도 할 것입니다. 자칫 민심을 잃을 수 있어 금융 당국은 1년째 시간만 끌어왔습니다. 금융 당국은 일단 정책·전세대출의 DSR 적용 여부를 ‘가늠’해 보겠다는 입장입니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 당국은 최근 은행에 정책·전세대출과 관련해 지역별, 소득 수준별로 DSR을 정교하게 산출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예컨대 정책·전세대출 포함 시 소득이 5000만원인 서울 지역 무주택자의 DSR이 평균적으로 얼마나 오르는지, 부실 위험은 크게 증가하는지 등을 세분화해 살펴보겠다는 것입니다.

DSR은 대출자가 한 해에 갚아야 하는 원리금(원금+이자) 상환액을 연 소득으로 나눈 값으로, 40%를 넘으면 은행 대출이 제한됩니다. 현재는 정책·전세대출은 DSR에 반영되지 않는데, 규제를 확대 적용하면 대출자에 미치는 여파가 어느 정도인지 우선 시뮬레이션을 해보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서울 시내의 은행 ATM. /뉴스1

금융 당국이 규제를 강화하려는 이유는 가계부채 억제 기조에도 정책대출 증가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금융권 가계대출은 5조2000억원 늘며 전월(9조7000억원)보다 증가 폭이 절반 가까이 줄었으나, 정책대출은 오히려 늘었습니다. 디딤돌·버팀목대출과 보금자리론 등은 지난달 2조2000억원 증가했는데, 이는 8월과 비교해 4000억원 늘어난 수준입니다. 지난 8월 디딤돌·버팀목대출 금리를 최대 0.4%포인트 올렸지만 꿈쩍하지도 않는 모습입니다.

금융 당국은 가계부채 억제를 위해선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를 막기 위한 전세대출 규제도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 1월 올해 업무 계획에 DSR 규제 적용 범위를 전세대출로 확대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서민 주거 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정치권 안팎에서 반대 여론이 조성되자 도입을 미뤄왔습니다. 금융위는 우선 1주택자가 추가로 전세대출을 받는 경우 부담하는 이자만 DSR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금융 당국은 2단계 스트레스 DSR 시행을 7월에서 9월로 연기해 가계부채 급증세를 초반에 잡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실기론’을 만회하기 위해선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사각지대’에 있는 정책·전세대출을 과감하게 규제의 영역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관료 출신 금융권 관계자는 “정책대출과 전세대출은 주 대출자가 취약계층·서민이기 때문에 어느 정권이건 규제하기 쉽지 않다”면서 “그러나 대책 마련에 미적대 가계부채를 키우고 집값도 잡지 못한 지난 정부를 교훈 삼아 이번엔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