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급전창구로 꼽히는 카드론 잔액이 연일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자 감독당국이 규제 카드를 꺼내들었다. 정부의 대출 조이기 풍선효과가 카드사로 번질 것을 우려한 조치다. 이번 정부 규제로 카드사 수익창구가 좁아질 것이라는 시각이 제기된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일부 카드사를 대상으로 이달 말까지 리스크 관리 계획 제출을 요구할 계획이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는 진단에서다.
금감원은 카드론이 특정 카드사를 중심으로 급증한 것으로 파악, 해당 카드사를 중점적으로 들여다 볼거란 업계 전언이다. 실제로 현대·우리·롯데카드의 카드론 잔액이 지난해 말과 비교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회사의 카드론이 전체 카드론 증가를 견인한 것은 문제 소지가 있다는 게 금감원 판단이다.
금감원은 향후 카드사들이 리스크 관리 계획을 제출하지 않거나 계획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면 이에 따른 제재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대출 규제 풍선효과 확대 여부를 점검하기 위해 카드론 잔액을 매일 모니터링한다는 방침이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9개 카드사의 8월말 카드론 잔액은 41조8309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던 전달 41조2265억원보다도 6000억원 이상 불었다. 지난해말 38조7613억원과 비교해서는 3조원 넘게 늘었다.
이중 롯데카드 8월 말 카드론 잔액은 5조3425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조471억원(24.3%) 증가했다. 같은 기간 현대카드는 5조5865억원으로 8104억원(16.9%), 우리카드는 3조8660억원으로 5325억원(15.9%) 늘었다. 이들 3사의 카드론 증액 규모가 전체 증가분의 80%를 차지한다.
같은 기간 삼성카드 카드론 잔액은 6조708억원으로 전년 말 대비 2720억원(4.6%) 증가했다. KB국민카드는 6조9105억원으로 2491억원(3.7%)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카드론 잔액이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거나 감소한 곳은 신한카드와 하나카드다. 신한카드의 지난달 말 카드론 잔액은 8조1698억원으로 카드사 중 취급액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지난해 말 대비 증가분은 497억원(0.6%)에 그쳤다. 하나카드의 경우 2조7983억원으로 오히려 지난해 말과 비교해 230억원(-0.8%)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카드사들이 고위험상품인 카드론을 확대한 배경에는 낮아진 가맹점 수수료가 자리한다. 15년간 14차례 영세가맹점 수수료가 낮아지자 카드사들은 더 이상 본업만으로는 수익을 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주로 카드론, 현금서비스와 같은 현금성 대출에 사업역량을 집중하면서 수익을 내고 있다.
현재 카드사 신용판매 부문 수익률은 0.5%에 불과하다. 이는 지난 2012년 가맹점이 합당하게 부담하는 비용을 ‘적격비용’으로 규정하고, 매년 3년마다 적격비용을 산출해 가맹점 수수료율을 재산정하는 제도를 10년 넘게 시행한 영향이다. 정부는 이기간 꾸준히 중소·영세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카드 수수료율을 인하해 왔다.
현재 전체 96% 이상을 차지하는 연매출 3억원 이하 영세가맹점에게 매기는 신용·체크카드 수수료율을 0.5%까지 내려온 상태다. 악화한 수익성을 카드론 규모를 대폭 늘려 수익성을 보전해왔지만, 카드론마저 줄어들 경우 실적 악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금성 대출 외에 이렇다 할 수익구조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초 손을 벌렸던 자동차금융 부문도 캐피탈사와의 경쟁에서 밀려 미래 먹거리 확보에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 카드론 잔액이 늘어나면서 당국에서 추가 규제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무작정 규제한다고 상황이 해소되지는 않는다”며 “카드론이 늘어나는 근본 원인은 신용판매 수익성이 떨어진 영향인 만큼 적격비용제도를 폐지하거나 실수요자 대출을 받을 수 있게끔 카드론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를 완화하는 안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IT조선 전대현 기자 jdh@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