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손민균

올해 정책서민금융 공급액이 지난해보다 30% 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 당국은 정책서민금융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서민·취약계층의 실제 금융 접근성은 떨어진 것이다.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난 서민·취약계층이 정책금융마저 이용하기 어렵게 되면 불법사금융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서민·취약계층에 대한 금융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약속이 공수표가 되지 않도록 금융 당국이 정책서민금융의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서민금융진흥원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7월 정책서민금융 공급액은 3조1793억원으로 전년 동기(4조8012억원)에 비해 33.78% 줄었다. 금액으로는 1조6219억원이 감소했다.

공급 규모가 가장 큰 근로자햇살론의 경우 올해 들어 7월까지 공급액이 1조4986억원으로, 전년 동기(2조4542억원)보다 9556억원(38.94%) 감소했다. 근로자햇살론은 신용과 소득이 낮아 제도권 금융 이용이 어려운 근로자에게 돈을 빌려주는 정책서민금융 상품이다.

햇살론15(17)와 햇살론뱅크, 햇살론유스, 최저신용자 특례보증, 미소금융 등의 정책서민금융 상품도 공급이 줄어들었다. 20% 이상 고금리 대출을 이용하는 최저신용자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햇살론15(17)는 지난해 1~7월 8620억원이 공급됐으나, 올해 1~7월에는 4989억원을 공급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공급 실적이 3631억원(42.12%) 줄었다.

정책서민금융상품 이용자가 은행권에 안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햇살론뱅크의 공급 실적 역시 같은 기간 8698억원에서 6826억원으로 1872억원(21.52%) 줄었다.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대학생·청년에게 대출을 지원하는 햇살론유스는 1829억원에서 1100억원으로 729억원(39.86%) 감소했고, 최저신용자의 불법사금융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최저신용자 특례보증도 1542억원에서 989억원으로 553억원(35.86%) 줄었다. 미소금융 역시 2142억원에서 2080억원으로 공급 실적이 62억원(2.89%) 축소됐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오른쪽)과 이재연 서민금융진흥원장 겸 신용회복위원장(왼쪽)이 지난달 7일 오후 서울 중구 중앙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서 서민금융 지원 현장방문을 마치고 간담회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 당국은 서민·취약계층에 대한 금융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정부는 서민금융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지난해 10월 윤석열 대통령은 “서민 금융 공급 확대를 통해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부담 완화 노력을 강화하겠다”고 발언한 이후 금융위원회는 “더 비상한 각오로 서민, 취약계층에 꼭 필요한 금융 지원이 제때 공급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다하겠다”라는 뜻을 밝혔다.

지난 7월 취임한 김병환 금융위원장 또한 지난달 서민금융진흥원을 방문해 “(서민금융) 집행 현장에서 정책효과가 의도한 대로 나타나는지, 전달체계에 누수가 없는지 꼼꼼히 점검할 것”이라며 “안정적인 정책서민금융을 지속적으로 공급해 신용위축에 따른 서민·취약계층의 금융 부담을 완화하겠다”라고 말했다.

정책서민금융의 공급이 줄어들면서 서민·취약계층의 자금 사정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책서민금융을 이용하는 대상은 주로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기 어려운 저신용·저소득층이다. 이들은 정책서민금융상품을 이용하지 못하면 불법사금융에서 돈을 구할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로 불법사금융으로 인한 피해 상담·신고가 올해 들어 급증하면서 최근 5년간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 1~5월 금융감독원의 불법사금융 피해 신고센터에 상담·신고된 불법사금융 피해 건수는 전년보다 9.58% 증가한 6232건으로 집계됐다.

오기형 민주당 의원은 “정부의 약속과 달리 정책서민금융 공급이 크게 감소하고, 채무조정 신청자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정부는 정책서민금융 공급을 확대하는 동시에 채무조정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