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한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 올라온 상호금융권 주택담보대출 절판 마케팅 광고 글. /커뮤니티 캡처

서울 양천구 아파트를 매매해 11월 이사를 준비 중인 김씨(45)는 현재 살고 있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 아파트를 처분할지 고민에 빠졌다. 양천구 아파트 매매 잔금을 아직 치르지 않은 상황에서 은행이 유주택자 주택담보대출 취급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일산 아파트 전세 입주자를 구한 상태라 오도 가도 못할 처지다.

양천구 아파트를 소개한 공인중개사는 김씨에게 “앞으로 가격이 더 오를 수 있으니 아파트를 절대 팔지 말라”며 유주택자 주담대를 취급하는 지역 단위 신용협동조합을 소개해 줬다. 금리는 은행권과 비슷한 수준의 연 4~5%대였고, 주택담보대출비율(LTV)도 80%까지 가능한 특판 상품이었다. 김씨는 “신협을 통해 오히려 은행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시중은행이 주담대와 전세대출 등 주택대출을 틀어막자 상호금융권이 틈새시장을 노리면서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상호금융권에선 일부 단위 농협, 신협, 수협, 새마을금고 등이 은행권에서 대출을 받지 못한 대출자를 대상으로 절판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은행권의 대출 규제가 곧 상호금융권에도 확대될 수 있으니 막차를 타라는 것이다.

3일 금융감독원 금융상품통합비교공시에 따르면 신협 단위 조합의 10년 만기 원리금분할상환 주담대 금리는 연 3.5~5.7%다. 같은 조건의 시중은행 주담대 금리(최저 금리 연 4.3%)와 비교하면 금리 하단이 0.8%포인트 차이 난다. 시중은행이 주담대 속도 조절을 위해 금리를 가파르게 올릴 때 상호금융권은 금리를 유지한 결과다. 일부 지역신협·새마을금고에서는 시중은행에서 원하는 한도와 금리를 받기 어려운 대출 수요자들을 겨냥해 최저 연 3.50%의 아파트 담보대출 특판을 출시했다.

온라인에선 상호금융권 주담대 절판 마케팅이 벌어지고 있다. 한 대형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이날 하루에만 대출 광고 200여건이 올라왔는데, 대부분 ‘은행권 규제 피할 수 있는 대출’, ‘규제 확대되기 전 마지막 대출’ 등의 제목이었다. 모두 지역 상호금융권에서 활동하는 대출 중개인이 게시한 광고다. 대출 중개인은 이런 방식으로 대출을 알선하고 금융사에서 수수료를 받는다.

일러스트=챗GPT 달리3

LTV 95%까지 대출이 가능하다는 저축은행과 대부업 광고도 퍼지고 있다. 이 대출 상품은 후순위로 대출 규제를 받지 않지만, 최저 금리가 연 9% 이상으로 높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규제 강화로 은행 대출 한도가 줄어든 대출자들이 우선 저축은행과 대부업을 통해 후순위 대출을 받고 버티다가 규제가 풀리면 대출을 갈아타는 방법도 공유하고 있다.

금융 당국도 은행권 대출 규제에 따른 풍선효과를 막기 위해 상호금융권과 보험업권 대출 신청 건수를 하루 단위로 점검하기로 했다. 금융권에선 과거 사례로 봤을 때 풍선효과를 막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문재인 정부가 2021년 가계대출 총량 규제에 나섰을 때도 제2금융권으로 대출 수요가 급격히 쏠렸다. 그해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율은 전년 대비 5.1%에 그쳤지만 저축은행은 16.3%, 새마을금고는 11.5%, 대부업은 12.2% 각각 늘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면서 대출을 막았지만, 수요자들은 우회 대출을 찾았고 결국 가계대출은 더 늘어났다”며 “지금 가계대출 증가세는 수도권 중심으로 집값이 상승한 영향인데 대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