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 /조선DB

이란 멜라트은행이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로 한국에 예치된 자금이 동결돼 수십억원의 손해를 봤다며 우리은행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했다. 미국 제재에 따른 이란 동결 자금 관련 첫 손해배상 소송 결과라 주목된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3민사부는 최근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이 우리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예금 반환 및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국제 제재에 따른 정상적인 자금 동결이고, 동결 기간에 이자를 지급했다는 점에서 손해배상을 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멜라트은행은 지난해 9월 우리은행에 예치된 202억원의 예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이 예금은 미국의 이란 경제 제재로 2018년 11월 동결된 자금이다. 멜라트은행은 예금 반환 외에도 2018년 11월 이후 5년 11개월 동안의 이자를 소장 송달일까지 연 6%, 그 이후 돈을 반환하는 날까지 연 12%의 이자를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우리은행은 이 예치금에 대한 이자는 정상 지급했다. 멜라트은행이 요구한 이자는 자금 동결로 손해를 입은 비용을 추가로 보상하라는 것이었다. 이 기간 자금 운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을 손해 봤다는 것이 멜라트은행의 주장이다. 우리은행이 패소했을 경우 예금 이외에 70억원가량을 추가로 멜라트은행에 지급해야 한다.

이 예금은 미국 정부의 이란 제재에 따라 국내 은행에 묶여 있던 돈이다. 이란은 2010년부터 우리은행·IBK기업은행에 이란 중앙은행(CBI) 명의의 원화 계좌를 개설하고 한국에 수출한 원유 대금을 받았다. 그러다 2018년 5월 미국 정부는 "이란이 비밀리에 핵개발을 해왔다"며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탈퇴하고 이란 경제·금융 제재를 강화했다. 이 제재로 이란중앙은행과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이 국내 은행에 맡긴 자금도 동결됐다.

지난해 미국과 이란이 상대국에 수감된 자국민 맞교환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한국에 동결된 자금의 이란 송금도 합의했다. 당시 국내 동결 자금은 한국 외교부 주도로 제3국을 통해 이란으로 전달됐는데, 이란 정부는 한국 정부에 자금 동결 기간 손해를 봤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멜라트은행이 우리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이란의 소송전 예고는 현실화했다. 우리은행에 예치된 멜라트은행 자금은 이란에 전달되지 않고 여전히 동결 중이다. 이 자금이 이란에 전달되지 않고 여전히 동결된 이유에 대해선 우리은행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소송 결과는 이란 정부의 소송 대응 방침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재판부의 판단이지만, 이란 측이 패소했다는 점에서 이란 정부의 소송 방침에도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멜라트은행 측은 아직 항소 여부 등을 결정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