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독립 보험대리점(GA)인 인카금융서비스가 자사 지점장을 대상으로 내준 대여금이 논란에 휩싸였다. 능력있는 설계사 신규 유치를 위해 회사가 지점장에게 적지 않은 금액을 지원한다는 명목이지만 속내를 뜯어보면 회사측에만 유리한 독소조항이 가득하다는 지적이다.
2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인카금융서비스는 타사 설계사 스카우트 자금 지원 명목으로 지점장들에게 약 2억원 한도로 사실상 대출 형식의 선지급지원금을 제공하고 있다. 설계사 한 명당 최대 5000만원 한도로 일종의 정착지원금을 내주는 것.
인카금융서비스는 소속설계사 1만4500여명, 지점 693개를 보유한 대형 GA로 코스닥 상장사이기도 하다. 대기업 계열사가 아닌 독립 법인 형태로 운영되는 GA 중 가장 큰 회사다.
회사의 선지급지원금은 공격 영업에 필요한 설계사 모집을 위해 지점장에게 지급하는 일종의 채용 장려금이다. 지점 규모를 키우려면 우수 설계사가 필요하고 여기에는 적잖은 돈이 필요한데, 지점장 개인자금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이를 지원한다는 취지다.
지점장이라고 해서 회사 직원은 아니다. 이들은 사업가형 지점장으로도 불리는데, 일반 보험설계사로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정 규모의 팀원을 꾸리면 회사가 해당 지점장과 영업 위탁계약을 체결한다. 지점의 운영과 관리, 보험설계사의 교육 업무 등을 총괄한다. 설계사 모집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자비로 해결해 사실상 자영업자에 가깝다.
통상 타사 설계사 한 명을 데려오기 위해서는 직전 연봉의 30% 수준을 정착지원금 형태로 지급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관례다. 직전 회사에서 1억원 연봉을 받던 설계사를 모집하려면 최소 3000만원을 먼저 쥐어줘야 한다는 얘기다.
회사는 또 상환기간 10개월, 연 8~9% 이자 등의 조건을 붙여 ‘관리자대출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적지 않은 금리지만 그래도 이들의 신용도를 감안하면 시장금리보다는 낮다고 회사 측은 강조한다. 그리고 설계사 영업실적이 곧 매출과 직결되는 만큼, 각 지점장에게 설계사 조직 확대를 주문한다.
문제는 선지급지원금 약정서에 지점장이 3년 이내 퇴사하면, 빌린 돈을 모두 상환하더라도 추가로 원금의 1배수(100%)를 ‘위약벌(위약금)’로 물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는 점이다. 계약서 내용대로라면 지점장이 5000만원을 빌리고 3년 내 회사를 떠난다면, 총 1억원을 갚아야 한다는 얘기다. 대부업으로 치면 법정 최고이자 20%보다 높은 금리다.
이에 대해 인카금융 관계자는 “지급원금을 모두 반환하면 3년이내 퇴사해도 추가 반환은 없으며 제도의 목적 또한 원금보다 많은 금액을 반환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따라서 법정최고이자 20%보다 높은 고금리 대출이라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물론 경쟁 GA도 선지급지원금 명목의 대여금을 지점장들에게 내주고 있다. 하지만 3년 내 퇴사 시 원금의 100%를 물어내라는 조항은 업계에서도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위약벌은 계약 위반에 따른 제재 성격의 벌금이다. ‘손해배상액의 예정’과 비슷하지만, 법정에서 무효 조건이 까다로워 더 강력한 제재로 여겨진다.
김기훈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회사가 위약벌을 체결하는 이유는 법원이 해당 금액을 과도하게 여겨도 감액 자체가 쉽지않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라며 “사업주 입장에서는 강력한 제재 수단인 만큼 이를 남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카금융서비스는 이같은 조치가 조직 내부 인력 이탈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최근 GA업권 내 대규모 설계사 이탈이 지속되면서 소위 정착지원금만 받고 나가는, 이른바 ‘먹튀’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란 논리다.
그러나 지점장들은 과도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통상 정착지원금은 설계사가 환수책임을 부담하면 되는데, 상위 관리자인 지점장이 연대책임을 지고 대출에 대한 위약벌까지 부담하는 경우는 업계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아울러 일부 지점장들은 해당 조항에 대해 사전에 충분한 설명도 이뤄지지 않았다고도 강조한다. 한 인카금융 지점장 A씨는 “계약에 있어 매우 중요사항임에도 이를 강조하는 음영처리나 자필서약 등이 없어 제대로 인지 못하고 계약한 지점장들이 많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회사에선 “계약서 작성시 해당 사업부장이 충분히 설명하고 반드시 본인에게 자필서명을 받기 때문에 해당 내용을 모르고 계약한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법조계에선 인카금융의 정착지원금 제도가 사실상 대출에 가까워 대부업법 위반 소지도 다분하다고 설명한다. 또다른 변호사는 “선지급지원금 약정서를 명목으로 설계사 지원금을 관리자에게 대여하는 방식은 사실상 대부업에 해당한다”며 “대부를 업으로 하려면 자격 등록을 해야하는데, 인카는 등록 예외사유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대부업을 위반하고 있다고 판단된다”고 해석했다.
대부업법 제6조의 2에 따르면 대부계약을 체결할 경우 이용자는 중요사항을 계약서에 자필로 기재하도록 규정돼 있다. 회사가 대여금, 선지급지원금 등 용어를 사용하면서 관련 법망을 교묘히 피한 새로운 형태의 위약벌을 만들어 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인카금융서비스도 문제점을 인지, 다음달부터 해당 조항을 수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인카금융서비스 관계자는 “해당 지원책은 신규 조직 영입 시 당사에 조기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파트너사와의 협력을 통해 상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며 “해당 내용에 문의가 많아 9월부터 계약서 내용을 수정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또 “지급한 원금에 대한 분할 반환만 이뤄지므로 고금리 대출이 아니다”라며 “당사가 자금지원을 운영하는데 소용되는 비용과 미상환액 손실을 고려하면 당사가 얻는 수익은 극히 미미하거나 오히려 손해가 발생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민사적으로는 양측이 계약서에 동의를 했기 때문에 위법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면서도 “다만 과도하게 한쪽으로 불리하거나 강제성이 띄는 경우 민법상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이는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 법원 판단하에 불공정거래 소지 여부를 검토할 여지는 있어 보인다”고 답했다.
IT조선 전대현 기자 jdh@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