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영업하는 대형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업체들이 전자지급결제대행(PG)사 대상 지급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채 사업을 이어 온 것으로 나타났다.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처럼 이커머스가 지급보증보험 없이 부실 위기에 내몰리면 PG사에 손실이 떠넘겨지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나 그간 이커머스업계가 책임 분담을 외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이커머스 업체에 지급보증보험 가입 등 판매대금 관련 안전장치를 마련할 것을 의무화하는 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다.
16일 공정거래위원회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영업 중인 대형 이커머스 쿠팡·알리익스프레스·G마켓은 총 11개의 PG사와 가맹 계약을 맺었다. 11건의 PG사 가맹 계약 중 PG사 대상 지급보증보험에 가입한 계약은 1건도 없었다.
업체별로 살펴보면 쿠팡이 1개, 알리익스프레스가 2개, G마켓이 8개 PG사와 가맹 계약을 맺은 상태다. 3개 이커머스 업체 모두 PG사와 가맹 계약을 맺으면서 지급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3사와 함께 5대 이커머스로 묶이는 11번가와 테무는 자체 결제 시스템을 운영하기에 국내 PG사와 가맹 계약을 맺지 않았고 따로 지급보증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이커머스가 가입하는 지급보증보험이란 피보험자가 PG사인 보험이다. 티몬·위메프 사태와 같이 대규모 온라인 결제 취소(환불) 중단 사태 등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상품이다. 소비자가 이커머스 쇼핑 과정에서 지급한 돈은 카드사→PG사→이커머스→이커머스 입점 업체(셀러) 순으로 지급된다. 결제 취소 요청이 들어오면 역순으로 판매대금이 환급된다. 지급보증보험은 쇼핑몰→PG사로 이행돼야 할 환급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때, 보험 가입자(이커머스)를 대신해 피보험자(PG사)에 보상금을 주는 안전장치다.
티몬·위메프 사태로 PG업계가 1000억원에 가까운 손실을 볼 위기에 처한 이유도 티몬·위메프가 지급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이 PG사에 적극적인 결제 취소를 주문하면서 PG사는 일차적으로 손실을 떠안게 됐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티몬·위메프에 판매대금을 환급받아야 하나 두 회사가 자본잠식에 빠진 데다 지급보증보험도 없어 돈을 돌려받을 길이 사실상 막힌 셈이다.
PG업계에 따르면 대형 이커머스가 PG사와 가맹 계약을 맺으며 지급보증보험 가입을 생략하는 것은 흔한 관행이다. 대형 이커머스의 경우, 월간 거래액이 수백억원 혹은 수천억원에 달한다. 이 거래액을 모두 보증하는 보험에 가입할 수는 있으나 보험료 부담 때문에 이커머스들은 보험 가입을 꺼리는 실정이다.
정부도 무보험 관행에 따른 이커머스발 연쇄 위기를 막고자 대책을 내놓았다. 정부는 지난 7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커머스 판매대금의 일정 비율을 예치·신탁·지급보증보험 등으로 별도 관리하는 방안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적용 대상과 비율 등은 업계·전문가 간담회 등을 거쳐 추후 결정될 예정이다.
박상혁 의원은 “이커머스 시장의 변화 속도를 정부 정책이 따라가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이제라도 신속하게 소비자·이커머스·입점 업체·PG사 등에게 이커머스발 리스크가 번지지 않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