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가입자가 독립 손해사정사를 무료로 선임할 수 있는 제도가 모든 손해보험 상품으로 확대돼 오는 7일부터 시행된다.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거절에 대응하기 위한 고객 권리가 늘어난 셈이다. 하지만 어떤 보험 종목에 권리를 적용할지 구체적인 기준조차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라 손해사정업계는 혼란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보험 가입자의 손해사정사 선임 요청을 보험사가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오는 7일 시행된다. 손해사정은 고객의 보험금 청구가 합리적인지 조사해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업무다. 하지만 보험사와 위탁 계약을 맺고 있는 손해사정 업체들이 보험사에 유리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금융 당국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객이 보험사로부터 독립된 손해사정사를 선임하면 그 비용을 보험사가 부담하도록 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현재는 실손보험에만 적용되는데, 개정안이 시행되면 다른 보험까지 확대된다.
문제는 어디까지 이 권리를 인정할 것인지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개정안은 독립 손해사정사 선임 권리를 폭넓게 보장하라는 취지의 조항만 있다. 보험업 감독규정에도 권리가 적용되는 보험 종목이 무엇인지 제시하지 않는다. 금융 당국과 보험업계는 기준을 정하기 위해 모범규준 개정에 착수한 상태지만, 법 시행 전까지 완성되지는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모범규준이 결정된 건 없다”며 “법 시행 전까지 나온다고 말하긴 힘들 것이다”라고 했다.
손해사정업계는 우선 제도가 시행된 뒤 어떤 기준이 만들어질 것인지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한 손해사정사는 “보험사가 자율적으로 기준을 정하는 것이라 자동차보험이나 배상책임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라며 “(손해사정업계가) 보험사들의 입장이 무엇인지 궁금해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특히 독립 손해사정사 보수가 시간이 지날수록 낮아지고 있어 개정안 시행에도 변화는 미미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현재 독립 손해사정사 보수는 실손보험을 기준으로 건당 20만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과거에는 30만원 안팎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었다고 한다. 결국 업무를 하면서 드는 비용까지 고려하면 남는 게 없어 사건 수임을 거부하는 사례까지 빈번해지고 있다.
독립 손해사정사 보수는 정해진 기준 없이 보험사가 자율적으로 정한다. 통상 손해사정 업체와 위탁 계약했을 때 정한 단가를 그대로 적용한다. 손해사정 업계는 금융 당국이 나서 구체적인 보수 기준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손해사정사는 “보험 가입자들이 제도를 잘 모르고 있어 활성화가 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서도 “손해사정사들이 적은 보수 때문에 일을 거절하는 경우도 많다”라고 전했다. 이어 “현실적으로 얼마를 줄지는 보험사의 고유한 권한이다”라며 “보험사가 보수를 올리면 고객이 독립 손해사정사를 더 많이 이용하게 되니 안 올리려고 하기 때문에 제도 취지에 수반하는 금융 당국의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