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은행에 주택담보대출 상품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주요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잔액이 이달 들어 5조원 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들이 금융당국 압박에 가계대출 금리를 수 차례 높이며 대응해왔지만 기준금리 인하 기대와 부동산 경기 회복에 따른 폭발적인 대출 수요를 가라앉히기는 역부족인 것으로 분석된다.

28일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25일 기준 713조3072억원으로 6월 말(708조5723억원)보다 4조7349억원 증가했다. 5대 은행 가계대출은 6월 한 달 만에 5조3415억원 증가해 2021년 7월(6조2000억원) 이후 2년 11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었고 이달 들어서도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다.

특히 주담대가 6월 말 552조1526억원에서 이달 25일 557조4116억원으로 5조2589억원 뛰면서 가계대출 증가세를 견인하고 있다. 이런 추세가 이달 말까지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가계대출과 주택담보대출 증가 폭이 각각 지난달 증가 폭과 비슷한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가계대출 증가세를 뒷받침하는 주된 요인으로는 부동산 경기 회복과 강한 매수 심리가 거론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달 넷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전주보다 0.30% 올라 18주 연속 상승세를 지속했다. 이는 지난 2018년 9월 둘째 주 이후 5년 10개월여 만의 최대치였다.

향후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상황에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빚투(빚으로 투자)’ 수요가 고개를 든 분위기다. 한국은행은 7월 주택가격전망지수가 전월보다 7포인트(p) 오른 115로, 지난 2021년 11월(116) 이후 2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고 24일 밝혔다.

최근 가계대출 추이가 심상치 않은 것은 은행권이 금융당국의 관리 강화 기조에 부응해 대출 금리를 인상하는데도 가파른 증가세가 꺾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지난 26일 기준 주담대 혼합형(고정) 금리(은행채 5년물 기준)는 연 2.900~5.263% 수준이다.

일주일 전인 지난 19일(연 2.840~5.294%)과 비교하면 상단이 0.031%포인트(p) 낮아졌지만 하단은 오히려 0.060%포인트 높아졌다. 같은 기간 혼합형 금리의 주요 지표인 은행채 5년물 금리가 3.345%에서 3.290%로 0.055% 내린 가운데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조정해 시장금리 하락 폭 방어에 나선 결과로 분석된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시장 압박 수위를 높임에 따라 시중은행은 이달 중 수차례 대출 금리를 높여왔다. 국민은행은 지난 3일과 18일 주담대 금리를 각 0.13%포인트, 0.2%포인트 올린 데 이어 오는 29일 추가로 0.2%포인트를 인상하기로 했다. 신한은행도 지난 15일과 22일 은행채 3년·5년물 기준금리를 0.05%포인트씩 높인 데 이어 오는 29일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0.1∼0.3% 상향 조정할 예정이다.

다만 최소한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시행되는 오는 9월까지 가계대출 증가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지배적인 시장 전망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 전 대출을 받으려는 수요가 몰리고 있다”며 “대출 금리가 5~6%에 달하는 시기를 지나온 상황에서 추가 금리 인하 기대가 높으니 가계대출 수요 증가를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