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챗GPT 달리3

금융 당국이 횡령 등 금융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책무구조도’의 조기 제출에 대한 은행·지주의 의사를 타진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제도가 시행되는 내년 1월에 책무구조도를 제출하게 되면 책무구조도의 내용이 미흡할 시 곧바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지배구조법) 위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당국은 미리 책무구조도를 받아 점검을 하려고 한다. 은행·지주는 책무구조도 조기 제출에 따른 불이익을 우려했으나, 금융 당국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책무구조도를 조기 제출하기로 가닥을 잡고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4일 금융 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금융감독원은 지주·은행을 대상으로 책무구조도 조기 제출에 대한 수요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은행·지주별로 언제쯤 책무구조도를 낼 수 있을지 물어보고 집계하는 중이다”라며 “현재 대부분이 법무법인에 마지막 검수 작업을 맡긴 상태로 법률 검토를 마치는 대로 책무구조도를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이라고도 불리는 책무구조도는 금융회사 임직원들의 직책별 내부통제와 위험관리에 대한 책임을 명시한 문서다.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관련 책무를 담당한 임직원이 책임을 져야 한다. 임직원이 직접 책임져야 하는 내부통제 대상 범위와 내용을 사전에 정해 금융사의 전반적인 내부통제 관리를 더욱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이 제도는 지배구조법이 개정되며 지난 3일부터 시행됐다. 다만, 이 제도는 6개월의 유예 기간이 있다. 내년 1월부터 금융사고 발생 시 책무구조도에 따른 경영진 제재가 실제로 이뤄진다.

그래픽=손민균

금융 당국은 은행·지주의 책무구조도 조기 제출을 독려하고 있다. 책무구조도를 시범 운영하면 내부통제를 위한 책무 배분이 적절한지 등에 대해 당국에서 컨설팅을 제공할 수 있어서다. 이러한 과정 없이 제도가 본격 시행되는 내년 1월에 책무구조도를 내게 되면, 문제가 발견될 경우 곧바로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금융 당국은 은행·지주가 책무구조도를 사전에 제출하도록 유인책도 내놓았다. 유인책의 주요 내용은 책무구조도를 미리 내는 금융사에 대해서는 컨설팅을 제공하고, 시범 운영 기간에 금융사고나 관리의무 위반 등이 발생하더라도 제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은행·지주는 책무구조도 조기 제출을 꺼렸다. 책무구조도를 미리 내면 금융사고가 발생할 때 곧바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금융 당국이 규제를 위반해도 처벌하지 않겠다는 비조치 의견서 발급이라는 ‘당근책’과 함께 은행·지주별로 책무구조도 조기 제출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전방위 압박에 나서면서 분위기는 변했다. 굼뜨게 책무구조도를 제출하다가는 당국의 눈 밖에 날 수 있다는 의견이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책무구조도 작성 작업을 거의 마무리 지은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책무구조도 시범 운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초반에는 책무구조도 조기 제출에 대한 이견이 있었지만, 당국에서 책무구조도를 시범 운영하라는 압박이 커지고 있으니 어차피 10월 말까지 낼 거면 미리 내자는 분위기가 생기고 있다”라고 말했다. 책무구조도의 시범 운영을 원하는 은행·지주는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10월 31일까지 금감원에 책무구조도를 제출하면 된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당국에서 10월 말이라고 시점을 박았는데 괜히 책무구조도를 늦게 내면 좋을 게 없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라며 “책무구조도 제출을 위해서는 전산 시스템 구축도 필요해 이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