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손민균

4대 시중은행이 지난 1년간 대기업 대출은 28조원 늘린 반면, 중소·벤처기업을 대상으로 한 ‘기술신용대출’은 21조원 가까이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신용대출은 기술력은 뛰어나지만 자본이 부족해 성장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벤처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대출 상품이다.

18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기술신용대출 잔액은 지난해 3월 173조3365억원에서 올해 3월 152조5203억원으로 20조8162억원(증감률 -12%) 감소했다. 4대 은행의 기술신용대출 건수(누적 기준)도 44만6351건에서 34만3170건으로 10만건 넘게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4대 은행의 대기업대출 잔액은 89조2037억원에서 117조6380억원으로 28조4343억원(32%) 늘었다.

4대 은행 중 기술신용대출을 가장 많이 줄인 곳은 국민은행인 것으로 집계됐다. 국민은행의 기술신용대출 잔액은 1년간 8조6242억원(-20%) 감소했다. 이어 우리은행(6조8780억원·-16%), 하나은행(4조3990억원·-10%), 신한은행(9150억원·-2%) 순이다.

대기업 대출을 가장 많이 늘린 곳은 우리은행이었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 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우리은행의 대기업대출 잔액은 같은 기간 8조2080억원(42%) 증가했다. 신한은행의 대기업대출 잔액이 7조6719억원(37%) 늘었으며, 국민은행(6조6842억원·26%), 하나은행(5조8702억원·25%)이 뒤를 이었다.

고금리 장기화와 경기 둔화 여파로 지난해 연체율이 치솟자, 은행들이 상대적으로 부실 위험이 적은 대기업 위주로 대출을 늘린 데 따른 결과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부분의 은행이 우량 기업 중심으로 기업 대출을 늘리는 여신 성장 전략에 힘을 싣고 있는 추세다”라며 “신용도가 높지 않고 부동산 등 회수가 확실한 담보가 없는 경우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어 “불경기에 폐업을 선택한 중소·벤처기업이 늘며 신규 대출이 감소한 영향도 크다”고 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올해 1~5월 법인 파산 신청 건수는 810건으로, 최근 5년 내 가장 많은 수준이다. 파산 신청을 하는 법인 대부분은 중소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월 9일 서울 시내 한 폐업 상점에 각종 고지서가 쌓여 있다. /연합뉴스

금융 당국이 기술신용대출 대상 업종과 집행 기준을 강화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022년 도·소매업 등 기술 연관성이 적은 업종을 대출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기술금융 가이드라인 세부 규정을 마련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기술금융 가이드라인이 강화되며 대상 업종과 기업이 줄어 기술신용대출 잔액과 건수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2022년 전만 해도 영세 사업자에게도 기술금융 우대금리로 대출을 내줬는데, 기준이 강화돼 소상공인·자영업자는 대출 연장이 불가능해진 점이 잔액 급감의 가장 큰 원인이다”라고 했다.

금융위는 기술금융 ‘내실화’에 주력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이달 1일부터 기술금융 본연의 취지를 강화하기 위해 기술력을 보유한 중소·벤처기업의 대출 한도를 확대하고, 은행의 기술금융 실적을 평가하는 테크평가에 은행의 우대금리 제공 실적 등을 반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