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5년 이상 고정금리 신용대출에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에 따른 가산(스트레스) 금리를 더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차주(돈을 빌리는 사람)가 스트레스 DSR로 인한 한도 감소를 피하기 위해 5년 이상 고정금리 신용대출을 선택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는 관련 상품은 없다.
이 때문에 5년 이상 고정금리 신용대출에 대한 가산금리를 더하지 않겠다는 금융 당국의 결정이 차주의 상품 선택권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자 신용대출 한도만을 줄이기 위한 ‘보여주기식’ 대책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오는 9월부터 스트레스 DSR 제도 2단계를 시행한다. 스트레스 DSR은 대출 이용기간 중 금리상승으로 원리금 상환부담이 상승할 가능성 등을 고려해 DSR 산정 시 일정 수준의 가산 금리를 부과해 대출 한도를 계산하는 제도다. 차주의 소득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가산 금리를 적용하면 차주가 갚아야 하는 연간 이자 비용이 늘어나게 된다. 결국 DSR 비율을 맞추기 위해서는 빌릴 수 있는 대출 한도가 줄어들게 된다.
스트레스 DSR은 현재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주담대)에만 적용된다. 오는 9월부터는 스트레스 DSR 2단계가 시행되며 은행권 신용대출과 제2금융권의 주담대까지 확대된다. 단, 신용대출은 잔액이 1억원을 초과하는 경우에 한해 적용된다.
금융 당국은 신용대출에 대해 스트레스 DSR을 적용할 때 장기 고정금리 상품에는 가산 금리를 적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금리 변동 위험을 반영하는 제도인 만큼 신용대출의 만기 및 금리 유형에 따라 스트레스 DSR을 차등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금융위가 밝힌 신용대출에 대한 스트레스 DSR 적용 방식은 ▲만기 5년 이상 고정금리는 미적용 ▲만기 3~5년 고정금리는 스트레스 금리×60% 적용 ▲그 외는 변동형에 준해 스트레스 금리×100% 적용이다.
만기 5년 이상 고정금리 상품을 선택하면 스트레스 DSR에 따른 가산 금리가 부과되지 않아 대출 한도가 줄어들지 않는다. 대신 장기간 금리를 고정하는 만큼 금리 변동에 따른 위험에서도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은행권에서는 만기가 5년이 넘는 고정금리 신용대출을 취급하지 않고 있다.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 이후 5년 이상 고정금리 신용대출 상품이 출시될 가능성도 크지 않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신용대출의 경우 보통 만기가 6개월, 1년 단위로 만기가 연장돼 최대 10년까지 가는 상품이 대부분이다”라며 “담보가 아닌 신용을 보고 가는 상품이라서 언제든 신용 상태가 변할 수 있는 만큼 5년 이상 고정금리로 상품을 만들기는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금융 당국은 신용대출 차주에 대해 장기 고정금리 상품에 대한 선택권을 표면적으로만 준 것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장기 고정금리 상품이 없는 상황에서 차주에게 이 상품을 선택하면 가산 금리를 적용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미래의 금리 변동성 위험을 줄이는 대신 당장의 가계부채의 양만 줄이는 데 급급한 게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이 금리 변동성을 줄이겠다는 것보다 대출 한도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 것 아니냐”고 했다.
금융 당국도 장기 고정금리 신용대출 상품의 수요가 부족해 상품 출시가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가계부채 관리 측면에서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한 금융 당국 관계자는 “신용대출의 경우 만기를 5년 이상으로 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것을 안다”라면서도 “생활자금 용도의 신용대출은 장기로, 특히 고정금리로 하길 원하지 않지만 일부 용도가 명확한 신용대출 상품의 경우 장기 고정금리 상품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신용대출에 대해서도 장기 고정금리로 빌리는 관행을 정착하려는 것도 있고, 신용대출이 주담대를 우회하는 대출이 되지 않도록 가계부채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결정을 내린 부분도 있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