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유동성 경색으로 저축성보험 판매에 열을 올렸던 한화생명이 이제는 전략을 180도 바꿔 보장성보험 중심으로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빅3 생보사로 경쟁사인 삼성생명이나 교보생명과는 비슷하면서도 나름 차별성을 둔 전략이다.

저축성보험을 주로 파는 방카슈랑스(은행을 통해 판매하는 보험상품) 비중을 대폭 낮추고, 주로 단기납 종신보험과 같은 보장성보험 확대 전략에 매진하고 있다.

한화생명이 보장성보험 상품 판매에 몰두하고 있다 / 한화생명

11일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 1분기 한화생명이 방카슈랑스 채널을 통해 얻은 초회보험료는 2297억원에 그친다. 같은 기간 경쟁사인 삼성생명 6377억원, 교보생명 1조4349억원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차이가 더 두드러진다. 한화생명의 지난해 방카슈랑스 초회보험료는 1058억원으로 같은 기간 삼성생명의 3조589억원과 교보생명 3조6414억원의 3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한화의 경우, 일시납이 아닌 월납 중심으로 판매전략을 펼친 결과다.

방카슈랑스는 은행에서 파는 상품이다 보니 통상 저축성보험을 많이 판다. 다만 지난해 새롭게 도입된 국제회계제도(IFRS17)하에서 저축성보험은 부채로 잡힌다. 업계에선 판매유인이 떨어지다보니 한화생명이 판매 조절에 나선 것이라 해석하고 있다.

이에 비해 보장성보험 판매 비중은 확대됐다. 한화생명 1분기 APE(연납화보험료) 9000억원 중 보장성보험이 차지하는 비중은 81%에 달했다. 특히 종신/CI 보험 상품 판매가 크게 늘어 지난해 1분기 2290억원 수준이던 것이 1년새 5340억원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 건강보험 대비 단기납 종신보험 판매율이 높게 나타나는데, 이것이 보장성보험 비중을 끌어올린 것으로 파악된다.

문제는 단기납 종신보험이 회계상 이익을 과대 평가한다는 점이다. 아울러 만기 도래시 대규모 환급금이 발생한다는 점도 회계 왜곡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화생명이 단기 실적 제고를 위해 유리한 상품 판매에만 매달린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단기납 종신보험은 기존 10~30년인 종신보험 납입 기간을 10년 미만으로 대폭 줄인 상품이다. 10년 뒤 납입보험료의 120% 이상을 환급해준다. 가입자가 만기까지 보험료를 내면 보험사 입장에선 그만큼 손해다. 자칫 큰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

문제의 핵심은 예실차에 있다. 예실차는 보험사가 계약자에게 지급할 것으로 예상하는 보험금에서 실제 지급한 보험금을 뺀 숫자다. 예실차가 플러스면 보험사 예측치보다 보험금이 적게 나갔다는 뜻이다. 반대로 보험사 예상보다 보험금 지츨이 많다면, 보험사가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회계 가정을 했다는 의미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해약률 등 데이터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기납 종신보험 판매에 집중해 보험계약마진(CSM)만 높이는 전략을 추구하다보면 보험 예실차가 마이너스로 갈 수 있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시장 전문가도 단기납 종신보험에 치중된 영업방식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단기납 종신보험을 판매해 벌어들인 보험료(APE)에 비해 실제로 남는 돈(CSM, 보험계약마진)이 적음에도 초기에는 많은 돈을 벌어들인 것처럼 보여져서다. 단기실적중심 영업방식으로 인해 건전성이 악화될 수 있다.

이병건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사망보험 APE만 놓고 보면 한화생명과 삼성생명이 별차이가 없지만, CSM 기준으로 보면 한화생명 1480억원으로 삼성생명 3350억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결국 종신보험 신계약 실적이 단기납 종신보험 효과로 크게 부풀려 보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같은 현상은 단기납 종신보험 APE가 사실상 선납보험료에 해당돼 일반 종신보험 대비 2배 가까이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한화생명의 이같은 영업형태는 지난해 4분기에도 마찬가지였다.

한 때 한화생명은 5.7% 확정금리형 저축성보험을 대거 파는 등, 단기 목돈 마련에 유리한 보험을 판매하기도 했다. 지난 2022년 하반기 저축성보험 APE만 3조2636억원에 달했다. 당해 APE(3조8557억원)의 85%가 하반기에 집중됐다. 같은 기간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의 1년 APE는 각각 1조7083억원, 2조3327억원에 불과했다.

고금리 추세가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으로 판단해 자산운용에 유리한 저축성보험 상품을 늘렸다는 게 한화생명측 설명이다. 하지만 당시 레고사태 등으로 채권발행이 어려워지자 단기적인 유동성 확보차원에서 저축성보험을 크게 늘린 것이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당시 레고랜드, 흥국생명 사태와 함께 금리가 급등하던 시기로 당국에서 보험사를 상대로 채권발행을 자제하라는 시그널이 있었다”며 “유동성에 문제가 있던 일부 보험사가 연금보험이나 저축보험을 확대해 유동성을 확보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초회보험료 기준 실적비교시, 납입방법(일시납 또는 월납)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나기에 왜곡이 있을 수 있다”며 “이는 ‘일시납 저축’ 중심의 방카시장 속, 한화생명이 보다 수익성이 높은 ‘월납 연금’ 중심의 P/F전략을 추진해 온 차이일 뿐, 당사는 25% 룰을 고려할 만큼 방카시장 내 시장지배력이 높은 보험사 중 하나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1분기 단기납 종신 판매 결과는 금융환경 및 고객니즈에 따른 업계 전반적 흐름의 결과일 뿐, 당사는 단기실적 상향을 위한 판매전략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면서 “대형생보사로서 건전 모집질서 확립과 보험업 이미지 제고에 앞장서고 있다”고 덧붙였다.

IT조선 전대현 기자 jdh@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