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금산분리(금융과 산업 자본의 분리) 완화에 다시 드라이브를 걸자 금융권에선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금산분리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데 여소야대가 심화한 22대 국회에서 이를 다시 추진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금융권에선 교체설이 거론되고 있는 김주현 금융위원장의 거취와 관련된 행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는 이달 말 은행권 관계자들을 만나 금산분리 의견을 청취하기로 했습니다. 금융위는 세계적으로 산업과 금융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빅블러(Big blue)’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금산분리 규제가 금융 혁신을 저해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금산분리는 금융자본인 은행과 산업자본인 기업 간의 결합을 제한하는 규제입니다. 현행 은행법상 산업자본은 시중은행의 지분을 4%까지만 보유할 수 있습니다. 또 금융지주사와 은행은 비금융사의 지분을 각각 5%와 15%까지만 소유할 수 있습니다. 산업자본이 은행에 투자하는 것은 물론, 금융지주사와 은행이 혁신 기업에 투자하는 것도 제한돼 있죠. 금융위는 금융지주와 은행의 기업 투자 제한을 풀어 금융 혁신을 촉진시키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금산분리는 김 위원장의 취임 일성이기도 합니다. 그는 2022년 7월 취임과 함께 ‘금융규제혁신회의’를 출범하고 금산분리 규제 장벽 허물기에 돌입했습니다. 그는 취임사에서도 “금산분리, 전업주의 등 과거의 전통적 틀에 얽매여 구애받지 않고 과감히 개선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야당과 시민단체 등의 반대로 금산분리 완화는 2년간 답보상태입니다. 금융위는 지난해 8월 금산분리 완화 방안을 발표하기로 했다가 야권의 반대에 부딪혀 이를 무기한 연기했습니다. 그런데 여소야대가 심화한 22대 국회에서 금산분리를 다시 추진하겠다고 나선 것이죠.
정치권과 금융권에선 금산분리를 위한 법 개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민주당 강령에는 “금산 분리 원칙을 견지해 금융소비자의 편익을 증대시키고 경제적 피해는 억제시킨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민주당 내에서 ‘금산 분리 원칙 견지’라는 표현을 강령에서 빼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22대 총선 승리로 논의의 진전이 없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금산분리 완화 반대를 주장했던 박홍배 전 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이 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서 입성했습니다.
민주당 관계자는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지율이 지지부진할 때 반(反)기업 이미지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총선 승리 후 이런 주장이 희미해졌다. 현재로선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 정책에 동의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했습니다.
금융권에선 김 위원장이 상반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과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사태 수습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하반기 규제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고 존재감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최근 김 위원장의 하반기 교체설이 거론되고 있어 이후 행보를 위해서라도 금산분리와 같은 대형 이슈를 제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금융 당국 관계자는 “그동안 스타트업과 중소기업 등의 반대 의견을 열심히 들었다”며 “각계 의견을 듣고 금산분리를 다시 한번 논의해보자는 차원이다”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