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두나무와 그룹 BTS의 소속사 하이브가 합작해 설립한 대체불가토큰(NFT) 기업 레벨스가 출범 후 지금껏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최근 몇 년간 NFT 시장의 침체가 계속되면서 이렇다 할 수익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레벨스는 올해 1분기에 영업손실 35억원, 당기순손실 29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9060만원에 불과했다. 사실상 마케팅과 법인 운영 등에 필요한 비용만 지출한 채 사업을 통한 수익을 거의 얻지 못한 셈이다.
레벨스는 지난 2022년 두나무와 하이브가 합작해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인근 샌타모니카에 설립한 회사다. 두나무가 500억원을 출자해 지분 75%를, 하이브가 170억원을 출자해 2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BTS 등 하이브 소속 가수들에 대한 미국 현지의 ‘팬심’을 겨냥해 NFT 발행·판매로 수익을 얻겠다는 것이 레벨스의 설립 목적이었다.
레벨스는 지난 2022년 10월 하이브 소속 가수들의 사진과 영상 콘텐츠를 디지털 카드로 만들어 거래하는 플랫폼인 ‘모먼티카’를 선보이기도 했다.
두나무는 특히 미국 시장에서 레벨스를 안착시키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대부분의 수익을 가상자산 거래 수수료로 얻기 때문에 불안정한 시장 상황에 대비한 추가 수익원 발굴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두나무의 대주주인 송치형 의장은 레벨스 설립 후 오랜 기간 미국에 체류하며 경영을 직접 챙겼다. 이석우 두나무 대표이사는 지난 2022년 열린 업비트 개발자 콘퍼런스(UDC)에서 “레벨스가 최대 역점 사업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레벨스는 설립 후 줄곧 적자를 면하지 못했다. 설립 첫해인 2022년 매출액은 2억2900만원이었다. 초기에 마케팅과 홍보 등에 많은 비용을 지출하면서 영업손실은 99억원, 당기순손실은 98억원을 기록했다. 이듬해 매출액은 3억2378만원으로 고작 1억원 늘어난 반면 영업손실과 당기순손실은 각각 144억원, 140억원으로 급증했다.
레벨스가 출범 2년이 넘도록 실적 반등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NFT 시장의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비트코인을 비롯한 주요 가상자산의 가격이 반등했지만, NFT 거래량은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NFT 통계 정보 플랫폼인 크립토슬램에 따르면 지난달 글로벌 NFT 시장의 전체 월간 판매량은 11억4830만달러(약 1조5657억원)를 기록했다. 이는 2022년 1월 거래량 60억3871만달러(약 8조2338억원)와 비교하면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같은 기간 거래 건수도 1366만건에서 783만건으로 급감했다.
NFT 시장은 지난 2021년부터 2022년 상반기까지 호황을 맞았다. 가상자산 가격이 크게 오르자, NFT에도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린 것이다. 2021년 1월 5억달러를 밑돌았던 NFT 월간 거래량은 같은 해 8월 55억달러로 불과 7개월 만에 11배 증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2년 테라·루나 폭락 사태와 당시 세계 3위 코인 거래소였던 FTX의 파산으로 가상자산 시장이 위축되면서 NFT 시장에서 자금이 빠져나갔다. 올해 초 미국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 등 여러 호재로 가상자산 시장은 살아난 반면, NFT 시장은 반등하지 못한 채 3년째 침체가 이어지고 있다.
금융 시장에서는 NFT 시장의 침체가 오랜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레벨스 역시 실적을 단기간에 개선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또 미국 시장에서 팬심이 가장 두터운 BTS가 멤버들의 잇따른 군 입대로 당분간 활동을 재개하지 못한다는 점도 레벨스의 실적 개선 가능성을 낮게 점치는 이유로 꼽힌다.
레벨스는 지난 3월 CJ E&M에서 17년간 근무한 김기강 대표를 새로 선임하는 등 최근 경영진 교체를 단행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레벨스는 NFT라는 신기술보다 엔터테인먼트사의 정체성을 더욱 부각시켜야 한다”면서 “BTS에 전체 멤버가 합류해 정식으로 활동을 재개하는 내년에는 실적이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