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은행 이사회와 릴레이 면담을 시작한다. 금감원은 은행권에서 금융상품 불완전판매, 배임 등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 만큼 이사회의 내부통제체계 감시와 경영진 견제 역할을 강화해달라고 당부할 계획이다. 특히 지배구조 선진화를 위해 각 은행이 제출한 ‘지배구조 모범 관행(로드맵)’에 관해서도 이사회와 심도 깊은 논의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21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5월 넷째 주부터 16개 은행에 대한 이사회 간담회를 시작한다. 현재 정기검사를 진행 중인 농협은행과 올해 하반기 검사 대상에 오른 KB국민은행은 초반 면담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 관계자는 “이번 주부터 시중·지방은행을 포함해 모든 은행·지주를 순차적으로 만나기 시작할 예정이다”라며 “우선 은행 이사회를 시작으로 연내 지주 이사회까지 면담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은행권에서 수천억원대 횡령 사고가 발생한 것을 계기로 지난해부터 금융지주·은행 이사회와의 면담을 정례화했다. 주인 없는 회사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금융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내부통제를 공고히 해야 하는데 이때 이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해 12월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 간담회에서 “금융사고는 일부 임직원의 일탈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내부통제체계가 실효성 있게 작동되지 못한 데 기인한다”라며 “내부통제의 최종 책임을 가지는 이사회가 주도적으로 나서 단기 실적 위주의 경영문화와 성과보상체계를 개선하고 강력한 내부통제 체계가 실효성 있게 작동되도록 노력해주시기 바란다”라고 말한 바 있다.
금감원은 올해 이사회 면담에서 횡령사고 이후에도 끊이지 않는 금융사고에 대한 재발 대책 마련을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은 횡령사고 발생 이후 내부통제 체계를 개선했으나,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사태, 소득액 등을 부풀려 과다 대출을 하는 배임 사고 등이 속속 발생했다. 이는 은행권에는 여전히 이익 중심의 경영문화로 인한 내부통제의 허점이 존재하므로 이사회의 역할이 한층 강화될 필요가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금감원은 각 은행에서 제출한 지배구조 로드맵에 대한 의견도 교환할 예정이다. 각 은행은 건전한 지배구조를 만들기 위해 사외이사 지원체계 구축, 최고경영자(CEO) 선임 및 경영승계절차 개선, 이사회의 집합적 정합성 및 독립성 확보, 사외이사 평가체계 강화를 골자로 하는 지배구조 로드맵을 금감원에 제출했다. 특히 지배구조 모범관행의 운영 및 주체가 이사회라는 게 금감원의 생각인 만큼 각 은행 이사회는 지배구조 모범관행 구축을 위한 과제별 로드맵을 감독 당국과 공유할 것으로 보인다.
이 연장선상에서 금감원은 주인이 없는 회사로 꼽히는 은행·지주에서 CEO나 사외이사 선임 시 경영진의 참호구축 문제가 발생하거나 폐쇄적인 경영문화가 나타나지 않도록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성을 강화하라는 주문도 할 것으로 보인다. 참호구축 문제는 소유 분산기업에서 현직 CEO가 자신이 통제 가능한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해 참호를 구축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금감원은 개별 은행·지주 이사회 면담을 진행하는 동시에 오는 7월에는 은행 이사회 의장을 한데 모아 간담회를 개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금감원 부원장 주재로 열리는 이사회 의장 간담회에서는 전 은행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이사회 선진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