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부터 거래가 시작된 홍콩 비트코인, 이더리움 현물 ETF에 들어온 자금 규모가 기대치를 밑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지난달 말 거래가 시작된 홍콩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에서 최근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홍콩 금융 당국이 중국 본토 투자자들의 거래를 막겠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당분간 비트코인 가격이 반등할 만한 동력이 사라졌다는 판단에 투자 심리가 악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13일 영국의 금융정보 분석업체인 파사이드 인베스터에 따르면 지난 2일부터 17일까지 홍콩 증시에 상장된 3개의 비트코인 현물 ETF에서는 총 2760만달러(약 375억원)가 순유출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13일에만 3270만달러(약 444억원)의 자금이 홍콩 비트코인 현물 ETF 계좌에서 빠져나갔다.

같은 기간 홍콩 증시의 이더리움 현물 ETF 3개에서도 230만달러(약 32억원)가 순유출됐다. 6개의 가상자산 현물 ETF에서 유출된 자금은 약 3000만달러(약 407억원)에 이른다.

홍콩 증권선물위원회(SFC)는 앞서 지난달 15일 보세라, AMC, 하베스트 등 중국 자산운용사 3곳이 신청한 비트코인·이더리움 현물 ETF의 발행을 승인했다.

금융 시장에서는 홍콩이 아시아 최대 가상자산 중심지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현금 상환만 가능한 구조로 돼 있는 미국 ETF 상품과 달리, 홍콩은 현금과 현물 상환을 모두 허용해 출시 초반부터 많은 투자 자금이 몰릴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현금 상환만 가능한 ETF는 기관투자자와 집합투자사업자 사이에 설정과 해지를 중개하는 지정참가자(AP)를 둬야 하고, 투자와 환매 과정에서 여러 절차와 비용 지출이 수반된다. 반면 현물 상환이 허용되면 중간 단계에서 기초자산을 매도할 필요가 없고, 추가로 지출되는 비용에 대한 부담도 덜게 된다.

중국 본토에서 유입되는 자금에 대한 기대감도 홍콩 비트코인·이더리움 현물 ETF 시장이 빠른 시간에 급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의 이유로 꼽혔다. 중국 정부는 ‘일국양제(一國兩制)’ 정책에 따라 홍콩에 대해서는 자율적인 금융 정책을 시행하도록 허용하고 있지만, 본토에서는 가상자산 투자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 본토 투자자들이 당국 규제를 피해 각종 우회로를 거쳐 홍콩 비트코인·이더리움 현물 ETF에 자금을 넣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싱가포르의 가상자산 분석업체인 프레스토 리서치는 지난달 홍콩 당국의 승인 결정을 앞두고 “홍콩 비트코인 현물 ETF가 상장되면 1년 간 100억~200억달러(약 14조~28조원)의 자금이 유입될 것”이라 전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중국 본토 자금의 가상자산 ETF 투자는 홍콩 금융 당국에 의해 제동이 걸린 상태다. 13일 가상자산 전문 매체인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홍콩 증권거래소(HKEX)는 중국 본토 투자자들의 홍콩 비트코인·이더리움 현물 ETF 투자를 막겠다는 방침을 거듭 밝혔다. 코인데스크는 본토에서 현물 상환이 가능한 ETF로 자금이 들어갈 경우 중국 정부의 자본 시장 통제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판단해, 금융 당국이 규제에 나섰다고 분석했다.

이달 들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가격이 약세를 보인 점도 홍콩 가상자산 ETF 시장의 투자 심리가 악화되는데 영향을 미쳤다.

17일 현재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인 업비트에서 비트코인은 91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비트코인은 지난달 초까지 1억원 이상에 거래가 됐지만, 지난달 20일 반감기(블록당 채굴 보상이 평소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드는 것)가 지난 후 약세를 보였다. 이달 초에는 8000만원대 초반까지 가격이 내려가기도 했다.

‘대장주’인 비트코인 가격이 약세를 보이면서 이더리움 가격도 눈에 띄게 하락했다. 지난달 중순 570만원에 거래가 됐던 이더리움은 이날 현재 408만원으로 2개월 만에 가격이 약 30% 떨어졌다. 특히 미국 SEC가 올해 이더리움 현물 ETF의 출시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늘면서, 이더리움 가격은 최근 하락 폭이 더욱 커졌다.

비트코인은 최근 고금리 장기화, 미국 ETF에서의 자금 유출 등으로 인해 계속 약세를 보였다. 사진은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업비트 라운지에 비트코인 시세가 표시된 모습. /뉴스1

홍콩 비트코인·이더리움 현물 ETF 시장이 침체되면서, 가상자산 시장도 당분간 상승 동력을 얻지 못한 채 횡보하거나 약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의 비트코인 현물 ETF 시장에서도 최근 신규 자금 유입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그레이스케일의 비트코인 신탁상품(GBTC)에서는 지금껏 177억달러(약 24조원)가 순유출된 것으로 집계됐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최근 미국의 물가 상승 흐름이 다소 둔화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비트코인 가격이 반등했지만, 여전히 상승 동력을 찾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홍콩 비트코인 ETF 시장은 본토에서의 투자에 대한 규제가 풀려야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