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내년 1월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불리는 책무구조도 도입을 앞두고 규모가 작아 임원이 부족한 은행의 경우에는 직원들까지 내부통제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책무구조도에서 내부통제의 책임이 부여되는 대상은 원칙적으로 임원이지만, 외국은행 국내 지점이나 소형 지방은행 같은 경우 소수의 임원에게 내부통제 대상 업무가 편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수의 임원들에게 내부통제 감시 의무가 집중적으로 부과되면 금융사고 예방이라는 책무구조도의 도입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
책무구조도는 최고경영자(CEO) 등 임원의 직책에 따른 내부통제 책임을 사전에 확정해 둔 문서로,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명확하게 책임을 묻기 위한 제도다.
9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책무구조도 도입 시 외국계은행 지점이나 소형 지방은행 등 소규모 은행은 업무의 의사결정권을 가진 직원에게 내부통제의 책무를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 당국은 금융지주와 은행이 책무구조도를 마련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과정에서 책무를 부여할 임원이 적은 은행을 중심으로 특정 임원에게 내부통제 책무가 집중될 수 있다는 문제가 나오자 이런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외국계은행 지점의 경우에는 임원이 지점장 한 명뿐인 경우가 많다. 지방은행의 경우에도 임원 숫자가 10명을 넘지 못하는 곳이 있다. 시중은행의 임원 수가 20~30명인 것과 비교하면 외국계은행 지점이나 소규모 지방은행의 임원은 과도한 내부통제 관리 의무를 부여받게 된다.
소수의 임원에게 내부통제 관리 의무가 몰릴 경우 책무구조도를 도입한 이유가 퇴색될 수 있다. 임원의 내부통제 관리 책임을 강화해 금융사고를 예방하자는 차원에서 책무구조도를 도입하지만, 임원이 책임져야 할 업무가 과중해지면 내부통제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 역시 지난 2월 금융권에 책무구조도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면서도 “책무의 배분이 특정 임원에게 편중되지 않도록 작성해야 한다”라고 안내했다.
결국 금융 당국은 책무구조도 도입 취지를 살리기 위해 임원 외에도 업무의 의사결정을 하는 직원이라면 해당 업무에 대해 내부통제 관리 책무를 부여하는 방안까지 살펴보기로 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외국계은행 지점에는 임원급은 지점장 한 명이고, 제주은행과 같이 규모가 작은 지방은행도 임원이 많지 않아서 책무구조도에 임원이 위험관리를 모두 하게 하면 내부통제의 실효성이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라며 “직원이라도 해당 업무에 대한 의사결정을 가졌다면 책무구조도상 책임자로 지정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보고 있다”라고 했다.
또 다른 금융 당국 관계자 “금융사 규모가 작다고 금융사고의 발생 위험이 떨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에 책무구조도를 동일하게 적용하기 위해 직원이라도 해당 업무에 의사결정권을 가졌다면 내부통제 관리의 책무를 부여하는 방법을 보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다만, 대형 은행의 경우 내부통제 의무가 임원에게 부여되는 것과 달리 소규모 은행에만 직원까지 책무가 부과되면 직원의 부담이 커질 수 있어 형평성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금융지주와 은행은 오는 7월 지배구조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내년 1월 3일까지 책무구조도를 마련해 금융 당국에 제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