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의 부실 차단을 위해 구원투수로 나선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올해 최소 3조원 규모의 부실채권(NPL)을 인수할 전망이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2금융권의 NPL 시장에서 캠코의 역할론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하반기로 예상됐던 금리 인하가 뒤로 밀리며 금융권의 연체율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복병이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캠코는 최근 회계법인을 대상으로 금융회사 보유 부실채권 인수 자문을 위한 제안요청을 공고했다. 올해 인수할 부실채권에 대한 평가 업무를 의뢰한 것이다.
부실채권이란 금융기관의 대출채권 가운데 원리금이 연체돼 정상적으로 회수되지 않는 대출채권을 가리킨다. 캠코는 시중은행이나 공공기관, 가계, 기업 등의 대규모 부실채권을 신속하게 인수해 금융위기 확산을 차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금융사는 캠코 등에 기존 가치보다 싸게 NPL을 매각해 연체율을 조정한다. 캠코는 담보가 있는 NPL의 경우 공매를 통해 원금 회수 절차를 밟는다. 담보가 없는 NPL의 경우 채무조정을 통해 채무자로부터 인수가보다 많은 돈을 회수한다.
캠코가 회계법인을 대상으로 보낸 제안요청서에 따르면 캠코는 올해 원가 기준 3조761억원 규모의 담보·무담보 NPL을 인수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쉽게 말해 3조원이 넘는 연체 대출채권을 캠코가 사들인다는 이야기다. 담보채권의 경우 아파트, 공장 등 1115건을 담보로 한 NPL을 매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감정액은 약 6761억원이다. 무담보채권은 차주(돈을 빌린 사람) 6만6000명, 2조4000억원의 NPL을 매입 대상으로 보고 있다.
캠코 관계자는 “제안요청서에 담긴 NPL 인수 규모는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개년 평균 금액을 기반으로 산정됐다”라며 “NPL별로 매입가율이 달라 실제 채권 인수에 투입되는 금액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캠코가 3조원의 NPL 인수 예상치를 내놓았지만, 금융권에서는 캠코가 실제 인수하는 NPL 규모는 더욱 클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3조원이라는 수치 자체가 올해 하반기 미국의 금리 인하를 예상하던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산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는 연내 통화긴축 정책이 종료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사그라들며 고금리를 버티지 못하고 NPL이 더욱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NPL이 증가하면 금융사는 연체율 조절을 위해 캠코 등을 대상으로 채권 매각 규모를 확대할 수 있다.
특히 NPL 인수 시장에서 캠코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고 예상되는 점도 캠코의 NPL 매입 규모가 예상치를 뛰어넘을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금융 당국은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부동산 PF시장 정상화에 나설 예정인데, 이때 캠코의 역할을 확대할 계획이다. 캠코는 지난 2008년에도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관련 NPL을 인수했는데, 당시 인수 규모는 7조3800억원에 이른다. 현재 캠코는 1조원 규모의 펀드를 통해 부동산 PF 관련 NPL 처리에 나선 상황이다.
연체율이 높아지는 저축은행과 새마을금고도 캠코에 NPL 매각 규모를 확대하려고 하는 상황이다. 저축은행은 올해 1분기 말 연체율이 7~8%로 상승하면서 금융 당국이 적극적인 NPL 정리를 유도하고 있다. 새마을금고의 경우 캠코가 지난해 1조원어치의 NPL을 매입하면서 지난해 말 연체율이 5%대로 낮아졌으나, 최근 7%대로 다시 오르면서 캠코에 NPL 매각을 요청하고 있다.
캠코 관계자는 “지난해 말에는 검토되지 않았던 새마을금고나 저축은행 NPL 인수 등이 추가로 검토되고 있어 NPL 인수 규모는 예상치와 달라질 수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