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은현

보험사와 보험금 분쟁을 할 때 독립된 손해사정사를 무료로 선임할 수 있는 제도가 강화된다. 다만 비용을 부담하지 않기 위해선 손해사정 업무가 시작되기 전 보험사에 알려야 하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손해사정은 고객의 보험금 청구가 합리적인지 조사하는 업무를 뜻한다. 손해액이 얼마인지 측정해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다. 하지만 보험사와 연계된 위탁 손해사정사들이 보험사에 유리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아 논란이 계속돼 왔다.

1일 국회 정무위원회 양정숙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금감원에 접수된 손해사정 관련 민원은 2017년 117건에서 2022년 278건으로 2.4배 늘어났다. 특히 금융 당국이 ‘신뢰받는 보험금 지급체계 정립을 위한 손해사정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던 2021년에도 민원은 185건에 달했다.

민원 급증의 배경에는 손해사정에 대한 신뢰도 하락이 자리 잡고 있다. 보험사는 고객의 보험금 청구가 과하다고 판단하면 고객에게 손해사정사를 통한 ‘현장심사’를 하겠다고 통보한다. 그런데 조사에 나서는 손해사정사 대부분은 보험사와 연계돼 있거나 보험사 소속인 경우가 많다. 보험사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보험사에만 유리한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보험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한 손해사정사는 “보험사와 연결된 손해사정사가 보험사에 유리한 결론을 낸다는 것은 확정적 사실로 봐도 무방하다”라고 했다. 그는 “약관에 명시되지 않은 ‘보상지침’이란 게 있다”라며 “고객이 어떤 질병에 걸렸어도 특정 검사를 진행했을 때만 질병으로 본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보험금 분쟁에 대응하려면 독립된 손해사정사나 변호사 등을 고용해야 한다. 하지만 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거나, 보험금이 소액일 경우 분쟁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분쟁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고려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험사로부터 독립된 손해사정사를 선임할 경우 그 비용을 보험사가 부담하는 제도를 시행 중이지만, 보험사 동의를 구해야 해 무용지물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보험사가 갖은 이유를 대며 독립 손해사정사 선임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실손의료보험 청구를 간소화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뉴스1

하지만 법이 개정되면서 논란은 사라질 전망이다. 개정된 보험업법에 ‘보험 가입자가 손해사정사를 선임하려고 할 때 동의기준을 충족하는 경우 보험사는 선임에 동의해야 한다’라는 강행규정이 신설되면서다. 동의기준은 손해사정사가 금융위에 등록돼 있는지 여부 등이다. 합법적인 손해사정사만 고용한다면, 보험사가 선임을 거부할 명분이 사라진 셈이다. 이 규정은 지난 2월 신설돼 올해 8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다만 손해사정사를 선임하는 시점이 중요하다. 현재 규정변경 예고된 보험업감독규정 일부개정고시안을 보면, 보험사가 손해사정 업무를 시작하기 전 다른 손해사정사를 선임한 경우의 비용은 보험사가 부담하도록 되어 있다. 반면 이미 보험사가 손해사정 업무를 마친 상황에서 이에 불복해 다른 손해사정사를 선임하면, 비용은 보험 가입자가 내야 한다.

전문가들은 보험사가 현장조사·현장심사 등을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미룬다면, 독립된 손해사정사 선임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고가 터지면 손해사정과 관련한 업무는 별도로 선임할 테니 보험사는 손해사정에 착수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야 한다”라고 했다.